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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통합보다 정체성 회복이 우선

박지호 목사(논설위원)

페이지 정보

17-09-0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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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 목사.jpg우리가 다 아는 일이지만 새삼 오래 전부터 물고기는 기독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기적"이나 요한복음 21장의 "물고기 153마리의 기적"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고기 상징은 로마의 핍박을 받고 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비밀스럽게 고백하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아크로스틱 혹은 애너그램 암호였습니다.


물고기에 담긴 상징성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표현들을 그 당시의 성도들이 사용했던 헬라어로 쓰면 "Ίησος Χριστός, ΘεοΥός, Σωτήρ"가 됩니다.

(1) Ίησος (예수)➝ Ι(2) Χριστός (그리스도)➝ Χ(3) Θεοῦ (하나님의)➝ Θ(4) Υός (아들) ➝ Υ(5) Σωτήρ (구원자) ➝ Σ

 

이번에는 단어와 분리된 다섯 개의 알파벳들을 순서대로 모아보겠습니다.

Ι + Χ + Θ + Υ + Σ ➝ ΙΧΘΥΣ=물고기


핍박으로 인해 비밀스럽게 신앙을 가졌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위에 설명된 순서들을 역으로 사유하여 물고기를 예수님의 독특성과 특별성을 의미하는 암호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핍박 아래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물고기 상징을 사용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길을 가다가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고기의 반을 의미하는 반호()를 그립니다. 반호를 받은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어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대 방향으로 반호()를 그림으로 물고기의 온전한 모양을 완성시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고백이 완성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서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성도들은 길에서 부둥켜안고, 서로 다독이며, 필요한 것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다시 못 보면 하늘에서 다시 보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물고기 상징을 사용하며 서로를 위로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물고기라는 정체성 하나로 엄청난 국가 권력을 극복하고, 지하교회의 핍박을 견디어 내면서 결국 전 세계적 찬란한 기독교를 일구어 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어떠합니까? 우리 교단이 살길은 합쳐서 숫자가 많고, 돈이 많고, 힘이 있어야 한국교회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주류 사고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교회 많은 교단 중에 교회 숫자가 수천 개에 해당하는 교단도 교계에서 인지도가 없는 경우가 많고, 교회 숫자는 몇 안 되는 교단도 대교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유는 정체성입니다.

 

 우리 교단의 한국교회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첫째로, 성령운동이고, 둘째로, 우리의 토론 문화이고, 셋째, 거룩성 회복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흐름은 우리의 정체성인 성령운동은 신비주의라고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근래 한 사람의 독재자에게 길들여진 총회원들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회의록을 토론도 없이 몇분만에 날치기 통과하려는 기도는 우리의 자유로운 토론문화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또한 부정부패한 사람을 배척하고 새로운 개혁교단을 추구한 것은 우리 교단이 거룩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들을 옹호하고 비호하는 세력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개혁교단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로 더더욱 안됩니다.  

 

과거 교단 통합을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하였지만 한사람의 적폐 때문에 다시 분열되었습니다. 결국 정체성이 다른 세력 끼리 정리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한 사람을 교황처럼 받들며 그 지시에 익숙해져서 토론문화는 중단되었고, 한사람의 말이 법이 되어 결국 헌법위에 군림하는 폐단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정체성이 전혀 다른 세력과 통합은 물리적으로는 가능하나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지난 우리 교단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교단 통합을 하되 절차와 과정이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절차와 과정보다 중요한 요소는 정체성입니다. 신중히 접근해야 됩니다. 총회장님의 cts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둘이 하나를 만들려다가 넷이 되는 경우는 이질적 정체성을 가진 두 세력을 몇 사람의 정치적 득실 때문에 무리하게 진행 된다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통합 보다 우선해야 할 명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소중히 가꾸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며, 한국교회에 큰 자리매김을 할 것이며, 뜻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이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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