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말리엘의 변호’ (사도행전 5장 27~42절)
나경오 목사(서울중부지방회 증경회장, 순복음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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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향한 비판과 조롱은 결코 오늘날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소설과 영화, 음악과 예술 작품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때로 왜곡되고, 때로는 모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부터 계속되어 온 역사적 현실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서 흩어졌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의 설교 한 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40년 된 앉은뱅이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고,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초대교회는 유무상통의 공동체로 성장하며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사회 전반에 ‘예수 열풍’이라 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당시 기득권층에게 큰 위협이었다. 로마 제국과 결탁하여 권력을 유지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사회 지배층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이 새로운 운동을 두려워했다. 결국 그들은 사도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사도들을 풀어 주셨고, 사도들은 다시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파했다.
유대 지도자들은 분노했다. 다시 사도들을 붙잡아 재판정에 세웠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처럼 사도들 역시 제거하려 했다. 바로 그때, 사도행전 5장에 기록된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5:29)라고 선포하며,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했다. 그 말을 들은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크게 분노하여 사도들을 죽이려 했다.
그 긴박한 순간에 한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바리새인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이었다. 사도행전 5장 38~39절에 기록된 그의 발언은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이 말은 단순한 중재 발언이 아니었다. 예수를 처형했던 세력 앞에서 사도들을 변호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신념이 필요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편견이 아닌 원칙으로 판단했다. 그는 순간적인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신앙과 역사적 통찰에 근거하여 사태를 바라보았다.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랍비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산헤드린 공회를 움직일 만큼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다. 사도 바울 역시 젊은 시절 그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다(행 22:3).
전승에 따르면 그는 니고데모와 스데반에게도 영향을 끼쳤으며, 말년에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가운데 ‘스데반의 죽음을 애도하는 니고데모와 가말리엘’이라는 그림이 있을 정도로, 그는 초대교회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가말리엘의 발언은 단순히 사도들을 살리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말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시험하는 기준이 되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은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그의 통찰은 이후 교회 역사를 통해 그대로 증명되었다. 초대교회는 온갖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더욱 확장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신앙의 역사는 언제나 특별한 영웅들만의 이야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의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의 성실함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한 인물이 바로 위대한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다.
바흐는 평생을 교회 음악가로 살았다. 그는 화려한 예술가의 삶을 꿈꾸기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실하게 작곡하고 연주해야 하는 현실 속에 있었다. 수많은 칸타타와 오르간 곡, 합창곡들은 대부분 예배와 일상의 필요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는 타협이나 체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치밀한 구조와 깊은 영성,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바흐는 생애 동안 1,500여 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중 상당수의 곡을 그는 죽기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쳐 썼다. 단 한 번의 영감으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매일의 성실한 노동과 반복된 수정의 결과였다. 바흐에게 음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감당해야 할 소명이었다. 그의 평온함과 깊이는 특별한 기적이 아니라,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한 삶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도들의 모습도 이와 같았다.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 뒤에도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사도행전 5장 42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었다. 성공이나 안전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맡겨진 사명을 매일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 전부였다. 가말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율법학자로서 진리를 따라 판단했고, 양심과 신앙에 근거하여 발언했다. 그날 재판정에서의 그의 변호는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다져 온 신념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역사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조롱하고 무너뜨리는 일에 인생을 쓰는 사람과, 진리를 세우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사도들과 가말리엘은 후자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세상의 박수나 권력을 좇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역사 속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주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말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의 뜻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가말리엘의 변호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신앙인들에게 던져지는 도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은 결국 하나님의 방법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날마다 주어진 자리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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