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서 언급된 ‘거룩’
<국제신학연구원>
페이지 정보
25-12-09 09:30관련링크
본문
‘거룩’은 구약과 신약 성경 모두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만큼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용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대표적인 성구들을 살펴보고, 이 단어가 각 성구의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탐구한다. 거룩은 구약의 거의 모든 책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다루어지지만, 여기서는 이 용어를 특별히 풍성하게 드러내는 세 권의 책, 출애굽기와 레위기 그리고 이사야서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 속에서 얼마나 깊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거룩’의 용례를 살펴보기에 앞서 그 단어 자체의 의미를 확인해보자.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קָדוֹשׁ, qādôš)인데, 주로 서술어 형태로 쓰이며, 명사형으로는 ‘코데쉬’(קֹדֶשׁ, qōdeš)라고 한다. 이 단어는 ‘구별되다’, ‘분리되다’의 의미를 지니는데, 기본적으로 도덕적 순결을 뜻하고 신에게 속한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히브리어와 어원을 공유하는 고대 근동의 셈어 문헌에서도 이 단어에 대한 유사한 용례가 발견되는데, 신에게 봉헌된 물건이나 사람 혹은 신의 전유물로 구별된 대상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출애굽기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성경 속 첫 번째 책이다. 특히 3장 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는 말씀에서 ‘거룩’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진다. 여기서 언급된 “거룩한 땅”은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구별된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모세가 호렙산 위에서 발을 딛고 서 있던 땅은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계신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모세가 목격했던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하나님은 열이 가해지면 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덧없는 피조물과는 구별되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29장 43절의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라는 말씀은 성막 건축 지침에 관한 본문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심으로 성막이 거룩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모세 한 사람만이 거룩한 땅의 경이로움을 경험했던 3장 5절과 달리, 회막을 통해 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게 된다. 특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공간의 거룩함이 인간 제사장의 행위나 희생 제물을 드리는 예식에 근거하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한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그 장소는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곧 거룩의 근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 그분 자체임을 나타낸다.
레위기는 성경 전체에서 ‘거룩’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11장 45절은 레위기의 주제 말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이 거룩을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지칭하셨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하신 구원 행위 속에서 드러난다. 거룩은 세상의 억압으로 고통받는 피조물을 해방하여 완전한 자유를 선사하신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폭력과 헛된 야욕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과 공의로 가득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 거하게 된다.
거룩하도록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레위기 19장은 그 답을 제시한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야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야훼이니라”(19:2-18).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따라야 할 삶이란 이기심과 욕망이 만연한 세상 한가운데서 자기희생적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가난한 자를 위하여 밭 모퉁이를 남겨두라’(19:9-10), ‘이웃을 속이지 말라’(19:11), ‘공의롭게 재판하라’(19:15), ‘나그네를 사랑하라’(19:34)라는 명령은 거룩이 제의적 정결만이 아니라 윤리적 삶을 포함함을 보여준다.
이사야서는 선지서 중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묘사하는 책이다. 특히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야훼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6:3)라는 천상의 찬양은 이사야서 전체의 신학을 응축하고 있다. 이 환상 속 천상 예배에서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으시고 그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며, 천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한다. 우리는 이 성구에서 “거룩하다”라는 찬양이 천상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내려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의 역사와 무관하게 영원 전부터 하늘의 높은 곳에서부터 이미 거룩하다 찬양받으신 분이시다. 이처럼 천상에서 울려 퍼진 거룩의 찬양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존귀함을 절정으로 드러낸다. 하나님은 그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사막을 지나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신 ‘여러 신 중의 하나’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온 땅 위에, 아니 그 너머 천상의 세계에서 높임 받으시는 거룩한 분이시다.
아울러 이사야서에서 거룩은 초월의 속성뿐 아니라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맺은 두 가지 언약, 즉 다윗 왕조를 영원히 붙드신다는 ‘다윗 언약’(55:3), 예루살렘 성전을 영원히 보존하신다는 ‘시온 언약’(33:20-22; 37:35)을 신실하게 지키신다. 인간은 언약을 쉽게 깨뜨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이처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함이 그분의 거룩함, 즉 구별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백성이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 끝까지 보호하시는 거룩한 분이시다. 이 신실한 거룩함은 심판 이후에도 “남은 자”(10:21)를 보존하신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포로기 시절 울려 퍼진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41:14)라는 말씀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언한다.
구약성경이 증언하는 ‘거룩’은 철저히 세상과 구별되어 계신 하나님과 관련된 단어이다. 영원 전부터 거룩하다 칭함을 받으신, 그 어떤 피조물도 다다를 수 없는 존귀함을 소유하신 하나님은 진정으로 거룩하시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이처럼 구별되어 계신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 찾아오셨다고 증언한다. 그분이 임하시면 죄로 더럽혀진 땅이 성결한 곳이 되고, 그분이 구원하신 “버러지 같은” 이스라엘도 거룩한 백성이라 불리는 복을 누린다. 이 거룩은 속물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하나님을 닮기 위해 나아가는 삶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릴지라도 끝까지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입증하신다. 영원 전 천상에서부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 땅의 역사 가운데서도 여전히 거룩하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