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네(εἰρήνη),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화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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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24 14:4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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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가치 혼란의 시대를 지나며 그 어느 때보다 각자가 추구하는 평화를 갈망하며 살아간다. 끊임없는 갈등과 불안, 도덕과 윤리의 붕괴 속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얻는 평화는 늘 조건부이며 일시적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잠시 평안했다가,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금세 불안의 늪으로 빠져든다. 우리가 갈망하는 진정한 평화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성경은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평화, ‘에이레네(εἰρήνη)’를 제시한다. 에이레네의 본래 의미를 추적해 보면, 기독교적 평화가 세상의 평화와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에이레네는 일차적으로 ‘전쟁(πόλεμος)’의 반대말이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에이레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가득 채워지는 ‘전인적 구원’을 의미한다. 이번 호에서는 성경이 말씀하는 ‘에이레네’의 참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성경적 평화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한다.
에이레네는 신약성경에서 ‘평화’ 또는 ‘평안’, 그리고 ‘화평’으로도 사용된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LXX)은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을 거의 예외 없이 ‘에이레네’로 번역했다. 히브리적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완전함’과 ‘풍요로움’ 등을 뜻한다. 마치 잘 정비된 기계가 마찰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듯, 건강한 신체가 활기차게 숨 쉬듯,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질서 있게 배치되어 생명력을 발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성경이 말씀하는 에이레네는 환경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중심에 불어넣어 주시는 ‘근원적 온전함’을 뿌리로 한다. 세상의 평화가 ‘밖에서 안으로’(환경이 좋아야 마음이 편함) 오는 것이라면, 성경적 평화는 ‘안에서 밖으로’(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에 환경을 이김) 흘러나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가 무엇인지에 관해 ‘세상의 평화’와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먼저 세상의 평화를 추구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의미하는 라틴어 표현)의 허상을 보여준다. 예수님 시대의 평화는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지되던 ‘팍스 로마나’였다. 이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은 압제와 굴복 위에 세워진 ‘가짜 평화’였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에이레네)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0:34). 이는 예수님이 평화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가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쌓아 올린 거짓 관계들을 복음의 ‘검’으로 해체하시겠다는 선포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의 가짜 평화와 결별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평화는 고난을 이기는 생명력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평안(에이레네)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예수님이 주시는 에이레네는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서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닻’과 같다. 세상은 고난이 오면 평화가 깨지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는 말씀처럼(요 16:33), 환난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에이레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가치 혼란이 지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에이레네를 누릴 수 있는가?
첫째, 평화의 근거를 ‘환경’에서 ‘하나님’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우리의 에이레네가 흔들리는 이유는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로마서 5장 1절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씀한다. 내가 하나님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다. 환경은 변해도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변하지 않을 때 에이레네를 누릴 수 있다.
둘째, 일상의 질서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한다. 에이레네는 ‘정상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고전 14:33). 내 삶의 시간 관리, 언어생활, 물질 사용, 인간관계가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다면 에이레네는 깨질 수밖에 없다. 일상의 질서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다시 세우는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 삶의 구석구석을 하나님의 ‘평화로운 질서’ 안에 다시 배치하는 작업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셋째, 능동적으로 화평을 만드는 사람, 즉 ‘피스메이커(εἰρηνοποιοί)’가 되어야 한다. 성경적 평화는 갈등의 상황을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의 ‘화평하게 하는 자(εἰρηνοποιοί)’는 적극적으로 깨진 관계를 수선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심는 사람이다. 갈등의 현장에서 비난 대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하늘의 에이레네를 확장하는 길이다.
결론적으로, 에이레네는 세상이 말하는 단순한 심리적 안녕이나 다툼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하나님과의 ‘완벽한 화해’이며, 그 결과로 우리 존재의 모든 어그러진 부분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회복되는 ‘전인적 구원의 실재’이다.
세상은 여전히 돈과 힘, 군사력으로 평화를 사려 하지만, 그 끝은 늘 더 큰 갈등과 공허함뿐이다. 오직 ‘에이레네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날까지 흠 없게 보전하실 때만(살전 5:23), 우리는 어떤 풍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소유하고 일상에서 그 향기를 드러낼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세상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될 것이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에이레네로 영원히 지키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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