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교회로 시험들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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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원로목사에게 총회의 새 길을 묻다③ / 조삼록 목사
조삼록 목사는 천상 목사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다. 한 평생 목회하면서 자신의 야망보다 복음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무난히 노력한 목사다. ‘교회로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 참고, 기다리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하나님 주신 그 글을 끝까지 지켜가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대교체의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불안한 동거를 할 것인가? 아름다운 동거를 할 것인가? 조삼록 목사는 정치적 거래를 버리면 아름다운 동거로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써 갈 수 있다고 말한다.
- 어떻게 예수를 만났습니까?
우리 가정 복음의 씨앗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통영 욕지도에 살 때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셨습니다. 그때 형님이신 고 조명록 목사님은 교회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3살 때 사천으로 이사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있었기에 형제들이 목회를 한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 평생에 영향을 준 것은 형님과 형수님입니다. 청소년 시절 형수님의 영향으로 다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고는 당시 광주 순복음진월교회를 시무하신 윤성덕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전 오순절신학교에 입학해 1년을 공부하다가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잠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일은 풀리지 않아 상당한 고충을 겪었습니다. 결국 형님이 다시 신학교를 가라고 해서 1963년 대조동 순복음신학교에 들어가 1965년에 졸업했습니다.
- 목회는 언제 시작했습니까?
곡성 금지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홍구 목사님이 공주로 내려가 전도도 하고 학교 사역도 같이 하자고 해서 공주로 갔습니다. 당시 이홍구 목사님의 땅에 열심히 일해 흙벽돌로 금흥고등공립학교를 설립해 교감 일을 맡았습니다. 또한 공주순복음교회도 개척했습니다. 그러다 1971년도에 서울 광나루순복음교회에 부임했고, 1974년도에 잠시 이태원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1975년에 성수순복음교회를 개척했습니다.
1976년 10월 17일에는 답십리교회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성도가 30명 남아 있을 때였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성도들은 흩어지고, 교회는 상처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목회했습니다. 대지 103평, 목욕탕을 구입해서 3층은 사택, 2층은 교회로 리모델링했습니다.
그러다 1993년 이태원교회에서 초빙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고 조명록 목사님의 헌신으로 부흥한 교회지만 이후 후임자들이 역사성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혼돈의 연속이었습니다. 7개월간 목회자 없이 장로님들이 설교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장로님들이 찾아와 “형님 목사님이 세우신 교회를 이대로 방치하고 있을 것이냐?”고 해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이태원교회는 한창 부흥할 때는 300여 명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부임했을 때 40여 명이 교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형님 교회를 계승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더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모든 일들을 화평한 가운데 조용하게 목회해 나가니까 떠났던 성도들이 다시 모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면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주변 주택 3채를 매입해 주차장을 마련하고, 교회도 새롭게 리모델링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교단적으로는 1994년(31대)과 1995년도(32대)에 기하성수호측 총회장을 맡아 교단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재단법인 이사로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습니다.
-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2013년 5월 19일 교회설립 60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날에 이태원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습니다. 후임목사로 지성호 목사가 부임해 아름다운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일 낮예배와 셋째 주일 오후예배에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주일예배는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사실 원로목사와 가족들이 본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우리 교회는 서로 존중하여 함께 예배는 전통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 원로목사란 누구입니까?
원로목사를 정의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솔직히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원로’는 말 그대로 경험이 많고, 경륜이 심오하며 그 분야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원로는 후임자에 대한 고문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 현실적으로 원로목사가 되면 본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럽습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이 문제로 장로님들과 진솔하게 의논했습니다. 나는 은퇴해도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해 주었습니다. 지성호 담임목사도 고맙게도 다소 불편할 텐데 잘 해주고 있습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는 경쟁관계가 아닙니다. 역사와 전통을 다음세대로 이어가도록 조정하고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두 사이가 ‘아름다운 동거’가 되어야 교회도 평안하고, 목회도 행복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동거’가 되면 교회도 불안하고, 목회도 불행해집니다.
원로목사가 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 좋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습니다. 여전히 내 안에 교회에 대한 애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간섭하면 교회가 힘들어집니다. 원로라는 자리에만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어찌되었든 후임목사 스타일로 목회하도록 냉정하게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저는 평신도로서 하나님 앞에 예배합니다.
-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아름다운 동거를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회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아프지만 냉정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적으로 후임자 청빙과정에서 ‘정치적 거래’(?)가 없어야 껄끄러운 관계가 안 됩니다. 교회 모르게 ‘비밀 회동이나 거래’로 청빙관계가 이뤄지면 반드시 쓴 독이 됩니다. 모든 일들은 교회적으로 합의와 공감을 거쳐 적법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서로에 대해 각을 세워서는 안 됩니다. 원로목사는 목회의 마지막 십자가입니다.
- 평생 어떻게 목회했습니까?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교회로 시험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생명공동체입니다. 분열보다는 화평을 낳고, 무리하게 성장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평생 교회의 화평을 가장 중요시해 목회했습니다. 할 말 다하고, 하고 싶은 일 다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것도 목사의 욕심입니다. 솔직하게 목회하고 거짓 없는 목회를 했습니다. 한 번은 권사님 한 분이 “목사님은 ‘잔머리’(?) 굴리지 않아 좋습니다‘라고 해요. 어찌 들으면 능력 없다는 말 같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 오늘날 성도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목회를 원하는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 부르신 바대로 평생목회를 했습니다.
- 목회를 하면서 원칙은?
예수님 말씀대로 섬기는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는 대접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대접 받는 자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말도 따뜻하게 하고, 밥 한 그릇도 사 주려고 했고…. 우리 교인들은 저를 알아요. 어떤 목사인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화려하고 요란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이렇게 사니까 하나님이 모든 일들을 형통하게 해 주셨어요. 그것으로 족합니다.
- 목회에 보람이 있으시다면?
처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곡성에서 사역을 시작해 여러 교회를 거쳐 이태원교회에서 은퇴했습니다. 49년을 목회사역에 전념했습니다. 가장 큰 보람은 그래도 49년 목회가 ‘하자 없이’ 잘 끝났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목사 아버지인 저를 존경한다고 해요. 가장 가까이에서 허물도 보고,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럼에도 인정해 준다는 사실이 영광이죠. 교회적으로도 마지막까지 본교회에서 예배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았는데 마지막도 교회에서 마칠 수 있어 이것이 목회의 자랑이요, 보람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될 것이고,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 목회하라면 이제는 더 잘할 것 같습니다.
- 목회하면서 아쉬움이 있다면?
더 사랑하고 섬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모든 교인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했어야 하는데 부족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편이데, 설교 하면서 ‘치는 설교’(?)를 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어떤 분은 할 말 다 안하고, 잘 참고 포용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어 마음에 걸립니다.
- 현 교단 상황을 진다하신다면?
여러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불신이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총회를 공의롭게 개혁한다고 대의명분으로 일어났는데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불신이 생기면 마음이 닫히고, 오해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사건건 갈등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불신의 벽을 허물고 치유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총회와 재단은 대립하고 대결구조가 아닌 함께 공생하고 상생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총회원들도 서로를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안에서 갈등을 빚을 때가 아닙니다.
- 그럼, 총회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입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고 생각과 뜻이 같아야 무슨 일이든 힘 있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다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조금 다르다고 적은 아닙니다. 다른 생각도 좋은 생각일 수 있습니다. 잘 들고, 합의점을 찾아 일이 되게 하는 것이 리더십이고 정치력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의를 모으는 정치력입니다.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목사는 목사입니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목사는 목사로 부름 받아 목사로 살다가 목사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평생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목사는 화를 내지 말라. 둘째, 성경이 아닌 것을 가지고 부풀려서 설교하지 말라. 셋째,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외국 목회 흉내내는 것입니다. 목사는 각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부르신대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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