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 (롬 12:1~2)
최희승 목사(대전서지방회장, 한밭성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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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1-03 10:0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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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 AI가 있습니다. 요즘 AI에게 무엇인가를 물으면 몇초 만에 대답을 해줍니다. 글을 써 달라고 하면 글을 써 주고,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면 그림을 만들어 주고, 어려운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요약해 줍니다. 외국어 번역도 하고, 음악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짜고, 공부도 도와줍니다.
분명 AI는 우리에게 큰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지혜와 기술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도구가 점점 편리해질수록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분별하는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026년 국제 AI 안전 보고서는 AI가 이미 정보 왜곡과 사기, 조작 등에 실제로 악용되고 있으며,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AI 자체가 아닙니다.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문제입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우리 대신 하나님을 믿어 줄 수 없습니다. AI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우리 대신 회개해 줄 수 없습니다. AI가 성경공부 교제를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우리 대신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AI가 찬송가를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우리 대신 하나님께 온 맘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성의 발전’이 아니라 ‘영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성은 “무엇을 아느냐”의 문제라면,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명령을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세상과 단절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되,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끌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여기에,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1.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사람이 반드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이 바뀌고, 집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어도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환경만 좋아지면 제가 달라질 겁니다.” “돈만 조금 더 있으면 제가 행복하게 살 겁니다.” “저 사람만 변하면 우리 가정이 좋아질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화의 출발점을 ‘외부’가 아니라, ‘마음’에서 찾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성경이 말하는 변화는 겉모습을 조금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원어의 의미에는 모습과 본질이 변화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변화됩니까?
첫째, 말씀을 통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은 너무 잘 봅니다. 그런데 자기 모습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 앞에 서면 내가 보입니다. “내가 교만했구나.”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살았구나.”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판단했구나.” “내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있었구나.” “내가 신앙생활은 오래 했지만, 마음은 세상을 따라가고 있었구나.” 말씀이 나를 비추어 줄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됩니다.
둘째, 성령을 통해 변화됩니다. 사람은 자기 결심만으로 자신을 완전히 바꾸기 어렵습니다. “이제 화내지 말아야지.” “이제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이제 기도해야지.” 결심하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우리의 깊은 내면까지 바꾸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셔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우리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도록 변화된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나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는가”가 아닙니다. “나는 얼마나 변화되었는가”입니다. 10년 믿었는데 10년 전과 똑같이 화를 냅니다. 20년 믿었는데 여전히 용서하지 못합니다. 30년 믿었는데 여전히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연수는 늘어났는데, 그리스도의 성품은 얼마나 자랐습니까? 예배 횟수는 늘어났는데, 사랑은 얼마나 깊어졌습니까? 성경 지식은 많아졌는데, 겸손은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기도 제목은 많아졌는데,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은 얼마나 자랐습니까?
2. 이 시대에는 지성보다 더욱 깊은 영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식이 부족한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검색하면 나옵니다. AI에게 물으면 알려 줍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보는 넘치는데 지혜는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지는데 분별력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아는 것과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설교를 많이 듣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성경대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AI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적 분별력’입니다. “이것이 가능한가”만 묻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유익한가”만 묻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는가”가 아니라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른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른 것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은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깊은 분별을 원하십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을 찾지만,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교회에는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사람’, ‘정보가 많은 사람’보다 ‘말씀에 붙들린 사람’, ‘기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보다 ‘기술을 다스릴 줄 아는 영적인 사람’이 더욱 필요합니다.
3. 우리에게는 나를 ‘참교육’해 줄 분이 필요합니다.
요즘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가운데 ‘참교육’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은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특별 조직이 학교 현장의 문제에 개입한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는 동시에 강압적 해결 방식에 대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저는 드라마의 폭력적 방식이나 해결책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목 하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교육!”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저 사람은 한번 제대로 교육받아야 돼!” “누가 저 사람 정신 좀 차리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하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합니다. “주님! 저를 참교육해 주십시오. 내 생각이 항상 옳은 줄 알았던 나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내 고집을 꺾어 주십시오. 내 교만을 깨뜨려 주십시오. 잘못된 욕심을 내려놓게 해 주십시오. 사람을 미워하고 판단했던 마음을 고쳐 주십시오.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나를 말씀으로 바로 세워 주십시오.”
사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무조건 “당신이 옳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랑으로 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길은 아닙니다.” “지금 그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나의 기분을 맞춰 주는 사람보다,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참교육하실 수 있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은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때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찌르십니다. 기도하다가 내가 잘못한 것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버려야 할 습관을 보여 주십니다. 돌이켜야 할 길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가 은혜의 순간입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 말고, “주님! 저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바꾸려고 애쓰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변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면 공동체가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성령 충만해지면 그를 통하여 주변 사람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은 말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4.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본문 1절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바울은 먼저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제 생각을 드립니다.” “제 물질을 드립니다.” “제 시간과 재능을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 저 자신을 드립니다.”
“산 제물이 된다”는 것은 주일 한 시간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난 뒤의 삶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인데 가정에서는 세상 사람과 똑같다면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주일에는 예배하지만, 월요일에는 정직하지 않다면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다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당 안의 신앙과 생활 속의 신앙이 일치하는 삶입니다.
5.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우리는 이 시대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AI도 사용해야 합니다. 스마트폰도 사용합니다. 세상의 문명과 기술도 활용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대의 도구는 사용할 수 있지만, 시대의 정신에 지배받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돈이 최고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최고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해도 우리는 정직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이 원수를 갚으라고 해도 우리는 용서를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이 자기 자신을 높이라고 해도 우리는 낮아져 섬겨야 합니다. 세상이 “내가 주인이다”라고 외칠 때 우리는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모두가 로마서 12장 1~2절의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날마다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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