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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밤을 덮는 따뜻한 이불”

임주택 목사(청주남지방회장, 청주복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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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6-06-09 09:27

본문

임주택 목사.jpg

오늘 본문의 야곱은 인생에서 가장 처절한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지만, 그 대가는 냉혹했습니다. 부모님의 품을 등지고 낯선 땅 하란으로 도망치던 야곱의 발걸음이 멈추었을 때, 어느새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광야 한복판에서 돌 하나를 베개 삼아 누운 야곱의 모습, 너무나도 낯설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차가운 광야의 밤을 당신의 따뜻한 약속으로 덮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통해, 광야 같은 삶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함께 듣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깊은 고독 속에서도 찾아오시는 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도착한 그곳은 지리적으로 ‘루스’라 불리는 곳이었지만, 성경은 의도적으로 ‘한 곳’이라 표현합니다. 히브리어 ‘마콤’은 단순한 장소를 뜻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신적 임재가 나타나는 거룩한 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야곱에게 그곳은 처음엔 해가 져서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던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눈길도, 아버지의 든든한 울타리도 사라진 자리. 오직 지팡이 하나와 차디찬 돌베개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적막한 밤, 하나님은 야곱의 꿈속으로 뚫고 들어오십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를 보여주십니다. 이 사닥다리는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고 쌓아 올린 바벨탑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이 친히 내려주신 은혜의 통로입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께 올라갈 기력 따위는 없었습니다. 죄책감에 눌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도망자에게 무슨 경건한 노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사닥다리 위에 서 계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야곱을 찾아오셔서 그의 곁을 지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갈멜산의 영광을 경험한 엘리야도 결국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습니다. ‘족하오니 내 생명을 거두소서.’ 탈진과 우울이 그의 돌베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곁에서 어루만지시며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화려한 성전의 연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의 지친 신음 소리가 들리는 광야 한복판에서 가장 강력하게 임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사역의 성과가 하나님 임재의 증거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자리는 성공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실패와 도주의 자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빈손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셨습니다. 

 

내 영혼이 돌베개를 베고 주님 앞에 홀로 섰을 때,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리고 그분의 세밀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알지 못하였다’는 말은 지식의 부재가 아닙니다. 경험적 깨달음의 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야곱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상황에 눌려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을 뿐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적으로 평가하고, 때로는 우리 스스로도 그 잣대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벧엘의 하나님은 야곱의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도망자 야곱이 아니라, 언약의 계승자 야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확신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돌베개 위에서도 평안히 잠들 수 있습니다. 


둘째,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여정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5절 상반절에서 하나님은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지키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마르’는 아주 특별한 단어입니다. 밤새 성벽 위에서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파수꾼의 모습,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양 떼를 지키기 위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목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전담 파수꾼이 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앞으로 겪게 될 라반의 속임수와 에서의 복수심, 그리고 수많은 인생의 지뢰밭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샤마르가 되어주시겠다고 서약하셨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이 약속의 실재를 직접 경험합니다. 라반이 야곱을 해하려 했을 때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 그를 막으셨습니다. 에서를 만나기 전 두려워 떨던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막연한 개념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기억하십시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인간의 힘으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없이는 하루도 버텨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눈동자는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얻은 평안은 환경이 바뀌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보호자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풍랑을 만난다 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 배에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전능하신 손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한, 어떤 풍파도 우리를 삼킬 수 없습니다.


셋째,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5절 하반절은 이렇게 맺습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저는 이 말씀에서 '다 이루기까지'라는 표현에 가장 큰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중간 포기'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약속을 뒤집기도 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지키지 못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끝내시는 분입니다.

 

야곱은 사실 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남의 발꿈치를 잡는 자,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욕심쟁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조건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내가 말한 것을 다 이루겠다’는 선포는 하나님의 명예와 성품을 건 약속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20년 만에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은 그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위대한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충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부르신 분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기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고,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신실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가 사명의 길을 다 마칠 때까지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부도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우리를 떠나고 환경은 우리를 배신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야곱의 전 생애를 지키고 인도하셨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손을 놓으려 할 때에도, 주님은 여러분의 손을 더욱 강하게 붙드실 것입니다. 그 신실하심 안에서 평안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주님이 맡겨주신 소명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십시오.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의 벧엘의 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를 보았습니다. 광야의 밤은 차가웠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 어떤 모닥불보다 뜨거웠습니다. 야곱은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서 야곱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도 때로 삭막한 광야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잠 못 이루는 고독의 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자리가 바로 벧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 내 약속을 다 이루기까지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

 

이 말씀이 기하성 총회원들의 심령과 사역을 덮는 따뜻한 이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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