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_maket_banner.png
순복음홍성교회 라동옥 목사가 직접 농사지은 벌꿀판매
이태근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묵상
본교단 업무협약 업체 / 기하성회원 특별우대
홍영건장로
하나로의료재단
종교인과세

성령의 능력 _행 3:1~10 > 설교

본문 바로가기

성령의 능력 _행 3:1~10 > 설교




성령의 능력 _행 3:1~10

정덕만 목사(증경총회장, 총회신문 자문위원)

페이지 정보

작성일17-09-07 13:33

본문

정덕만 목사.jpg동물의 왕, 사자 한 마리가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권세를 뽐내고 싶은 차에 얼룩말을 만났다. “얼룩말아 누가 정글의 왕이지?” “아 그야 물론 정글의 왕은 사자님이시죠.” 한 참 후에 원숭이를 만났다.

 

“원숭아 누가 정글의 왕이지?” “당연히 사자님이 왕이죠.” 한 참 후에 이번에는 커다란 코끼리를 만났다. “코끼리아 누가 정글의 왕이지?” 코끼리는 대답대신 그 길고 강력한 코로 사자의 허리를 휘감아서 공중에 한 번 돌린 뒤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사자는 욱씬거리는 허리를 겨우 일으켜 세우고 꽁무니를 빼면서 그래도 사자의 자존심에 끝까지 한 마디를 한다. “아무리 내 질문에 해답을 모른다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면 어떡해?”


짐승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에서는 권세가 주어지면 그것으로 남에게 과시하고, 억압하고 지배하려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영역에서 권능의 목적은 인간 세계에서의 권능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르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승천하시던 날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남기셨다.
행 1:8절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을 통해서 주시겠다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능력은 죄악으로 일그러진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룩한 변화를 일으켜, 그들에게 참된 유익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날에 강림하신 성령의 능력의 목적이다.


사도행전 3장에서 우리는 오순절 날(day of Pentecost)에 임하신 성령님이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성령님의 능력의 목적이 어떻게 나타나고, 그 능력을 통해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바, 성령이 임하심으로 주어지는 능력을 이해하려면 본문 사도행전 3장에서 다음의 3가지 질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로,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본문 3장 1절부터 10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후,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기도(제 9시: 오후3시)를 하기 위해 성전으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날따라 ‘뭔가’ 그들(베드로와 요한)의 시선을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에게 이끄는 것이었다. 평소엔 수없이 그냥 지나쳤을 그 거지 앉은뱅이에게 ‘왠지’ 그날따라 눈이 가고 관심이 쏠린 것이다. 그 날 그 거지에게 시선이 쏠리게 만든 그 ‘왠지’가 바로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베드로와 요한은 그 거지에게 치유를 선포하였고,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그 거지는 난 생 처음으로 일어나 걷고 뛰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둘째로, 왜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가? 그 기적이 일어난 이유를 3가지로 생각해 보기 원한다.


첫째 이유는, 성실함(충성스러움)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날 평소해 오던 기도의 스케줄에 맞춰 기도하러 가던 길이었다.  매일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고 그 마땅히 해야할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성실함·충성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무슨 특별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시기에 성실한 성도를 통해 역사하신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성실히 수행하다보면 그 성실함의 현장, 성실함의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 기적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긍휼어린 관심이다.
본문 4절을 보면,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 베드로와 요한은 평소에도 거의 매일 그 앉은뱅이 거지를 지나치면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오늘은 특별히 그를 주목하여 보게 되었을까? 왜 오늘은 그의 구걸하는 소리가  특별하게 들렸을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으시는 분이시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겉으로 보이지 않는 상처와 아픔을 보시는 분이고, 겉으로 들리지 않는 마음의 고통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하나님처럼 보고 들으려고 하는 그런 충성스런 일꾼을 찾으신다. 하나님처럼 세상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남을 ‘긍휼어린 관심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그런 긍휼히 여기는 관심의 마음을 가진 자를 찾으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놀라운 기적의 일, 한 사람의 인생을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런데 남에 대한 ‘긍휼어린 관심의 마음’은 성령이 우리 인격 속에 찾아오셔서 감동해주시고 인도해주실 때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세 번째 이유는, 성령의 충만함이다. 
본문 6절에, 베드로가 거지에게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구절에서 ‘내게 있는 것으로’란 말을 살펴보자. 엄밀히 말하면 베드로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기 잡는 기술과 가끔씩 욱하는 성질 외에는… 배운 학식도, 재물도, 사람을 고칠만한 특별한 의술도 없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를 향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라고 외치면서 “나는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라”할 때 ‘내게 있는 것’이란 본래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을 의미한다.


누가 이 앉은뱅이를 향하여 감히 일어나라고 외칠 담대함과 능력을 베드로에게 주었단 말인가? 그게 바로 성령님이시고 성령의 능력, 성령의 선물(은사)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주시는 각종 은사들(선물)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주님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능력 있게 감당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해야 한다. 더 많은 성령의 은사들을 부어주시도록 사모해야 한다. 그것들이 없이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힘과 능력으로는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보여주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그런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사도행전 3장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사람들을 치유하셨던 방법은 매우 다양했다. 
복음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말씀으로만 명하심으로써 사람들을 고치신 경우가 21번 있었다. 예수님이 직접 병자의 몸을 만져주심으로 고치신 경우는 13번 있었고, 환자가 직접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어서 고침 받은 경우도 1번 있었다.


예수님의 설교나 가르치심을 듣던 중에 사람들이 고침을 받은 경우는 9번 있었고,  병자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심으로 고치신 경우는 8번 있었다. 환자 본인의 믿음을 예수님께 보임으로써 고침 받은 경우가 7번, 환자 본인이 아니라 환자의 친구나 가족이 환자 대신 믿음을 보임으로써 고침 받은 경우가 8번 있었다.


이 사례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다양한 처지에서, 다양한 시간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날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도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문제와 고통의 핵심은 옛날 사람들이 겪었던 그런 물질적 빈곤이나, 환경적 열악함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꿈도 꿔보지 못했던 그런 물질적 풍요와 과학의 발전과 편리함과, 신속함과 재미와 온갖 발달된 의술과 의약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공허하고, 신경질환을 많이 앓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가정이 불안하고 깨어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예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도행전 3장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루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육신에 얼룩진 상처를 치유하시고, 불행한 인생의 방향을 축복된 길로 바꾸어주셨던 그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요 또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다가오는 성령강림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의 심령이 성령의 불길로  뜨겁게 타오르기를 사모하자. 성령의 충만함을사모하자.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들을 사모하자! 그래서 우리 신앙이 변화되고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고, 나아가 세상을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 성령의 사람들, 능력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소개구독안내광고안내고충처리안개인정보취금안내 및 이용약관홈페이지 제작안내공지사항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4649 / 등록일 : 2017년 08월 07일
발행인 : 양재철 목사 / 편집인 : 송시웅 목사
주소 :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해로 81길 22-26(상계동) / TEL: (02) 720-6839 Fax: (02) 720-7724 / 발행일 2005년 03월 02일
청소년보호 책임자 : 이은정 (02) 720-6839
Copyright ⓒ 2017 기하성총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