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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로 이 세상을 살 때 (딤전 4:8~10)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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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로 이 세상을 살 때 (딤전 4:8~10) > 설교




성도로 이 세상을 살 때 (딤전 4:8~10)

김동욱 목사(대구경북지방회장, 삼당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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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3-05-11 09:47

본문

김동욱 목사.jpg

오늘날을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그만큼 장수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 세상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옛날 같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의학이 발달하고 신약이 개발되고 교통편이 좋아지면서 신속한 병원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져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건강을 위해서 각종 운동으로 걷기, 수영, 골프헬스 등을 하는데다 음식도 몸에 유익한 건강식단에다 각종 보조식품 등을 섭취하면서 그 만큼 평균수명이 연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산다고 능사는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래 살지라도 일단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고 소일거리가 있어 무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은퇴설계 전문가가 한 말인데,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필요한 5자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놀자 쓰자 베풀자 웃자 걷자입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이렇게 육체적으로 건강해서 몸 아프지 않고 장수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본문 딤전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육체의 연단은 즉 육체의 건강이나 아름다움을 위해서 애쓰는 모든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이 금생 곧 지금의 생애에 있어서 얼마간의 유익은 있으나 경건은 지금 뿐만아니라 내생 곧 장차 들어갈 천국이 약속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인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살 때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겠습니까?


1. 외줄타기를 하듯이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이발소에 간 적이 있는데 연세가 많은 이발사분이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자식도 손주도 다 필요없고 그저 아내하고 이 세상 잘 먹고 잘 살다 죽으면 그만입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죽음후에 들어갈 내세에 관심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이 분이 그저 바라는 것은 금생에서 육체를 위하는 희락뿐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나님나라와 영생에 대한 예수의 복음을 전하지만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생에 천국이 있다고 믿는 성도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육체와 세상만을 위해 사는 불신자들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마치 외줄타기 명인이 외줄타기를 하듯이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TV 프로에서 공중에서 외줄타기 공연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외줄타기 명인이 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줄 위를 걸어가면서 묘기를 부리는데 간혹 한쪽으로 넘어져 떨어질 듯 기우뚱거리기도 하고 아슬 아슬하게 걸어가면서도 여전히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보니까 손에 부채, 또는 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그것으로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줄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렇게 잘 건너가느냐는 질문에 ‘건너편 줄 끝 한 곳만을 주목’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로 금생에서 하나님나라를 바라며 신앙생활하는 우리는 육신의 소욕으로 유혹해서 믿음에서 떨어뜨리려는 마귀의 집요한 흔들기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무엇보다 금생에서 내생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외줄타기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만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면서 내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어디를 주목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하였습니다. 성도는 비록 육신을 입고 지금의 세상을 살지라도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기에 지나가고 없어질 세상 것에 필요 이상으로 주목하고 집착을 해서는 안됩니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럼에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치게 세상과 육체에 치우쳐 살아갑니다. 건강한 육체를 위해서 그리고 외모를 가꾸기위해서 세상 즐거움을 위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까지 합니다. 너무 세상에 치우쳤고 균형감각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는 외줄타기 명인이 손에 부채와 장대를 들고 걸어가듯이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믿음을 지켜 무사히 천국에 입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의 날, 마지막 심판의 날이 가깝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나라의 약속의 자녀로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부활의 소망가운데 주의 날을 바라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살지라도 세상에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벧후 3:11~13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오늘날 국제 정세나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 자연재해들을 보노라면 당장 마지막 주의 날이 임한다 할지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살전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한 말씀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진실로 주의 날이 가깝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그 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정신을 차리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지금의 세상에서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무엇보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창 3장에서 뱀(마귀)이 첫 사람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끔 간교한 말로 미혹합니다. 

 

그런데 창 2:17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엄한 경고의 말씀을 이미 들었건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자 육신의 눈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가 달리 보입니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한마디로 선악과를 눈으로 보는 순간 취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서는 결국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눈에 세상 것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이게 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님에도 마음 속에서 따먹어도 된다 괜찮다 별일 없다 마귀의 간교한 감언이설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마 4장에서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방식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을 때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물리쳤듯이 그렇게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세상 것에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세상 유혹이 너무 크고 달콤하다 보면 솔직히 그 탐심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부교역자 시절 교회사택에 거주할 땐데 교회에서 사택으로 오다보면 담 하나 사이로 차 집사님 댁이 있는데 글쎄 가을에 차 집사님네 감나무 가지에 정말 발갛게 너무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실한 홍시 몇개가 달려서 담을 넘어와 있는게 보이는 겁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을 오고 가면서 홍시를 보다보니 주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어 보여 따먹고 싶은 탐심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도 목사인데 안되지.. 안되지.. 하다가 자꾸 보다보니 주인 허락없이 결국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때 제가 느낀게 있습니다. 목사도 별 수 없구나 여전히 내 안에 아담의 속성이 있구나. 에덴동산에만 선악과가 있는게 아니고 지금도 매일같이 내 앞에 선악과가 있구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것에 대한 탐심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생각이 둔해지고 판단이 흐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마귀가 하는 짓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리는 것인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욕심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욕심 때문에 마귀와 세상의 종이되어 사기, 살인, 횡령, 다툼,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약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하나님은 사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못박아 죽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내 모든 죄와 욕심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들입니다. 아담안에서 세상 욕심을 좇아 살던 옛 사람인 내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철저히 스스로를 세상 욕심에 대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위해 성령으로 봉사하고 섬기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의 날 마지막 심판을 진실로 확신한다면 세상 정욕과 탐심을 못박으라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천국의 푯대만 바라보고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잠시 육신을 입고 지나가는 나그네 삶을 살 뿐입니다. 세상 욕심에 치우쳐 신앙생활의 균형감각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 주의 날을 기다리기까지 성도로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살면서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라하신 인생 여정을 잘 마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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