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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물찾기

명광현 목사(경기남·강원지역총연합회 회계, 상록수명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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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6 15:05

본문

명광현 목사.jpg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다. 우리는 매일 아침 붓을 들고 오늘의 풍경을 그려 나가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그 붓을 빼앗아 전혀 다른 색을 칠해버리기도 한다. 내게는 지난 1월의 첫 주일이 그랬다. 그날 아침, 나는 유난히 정성스럽게 넥타이를 매만졌다. 새해의 첫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과 예배를 마치고는 공동의회에서 지난해의 넘치는 예산과, 출석 성도의 증가, 그리고 새해의 멋진 계획을 소개하려고 마음은 적당히 부풀어 있었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가슴을 채웠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은 예고도 없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변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세상의 불이 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열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덟 시간의 대수술과 중환자실에서의 긴박했던 세 시간.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병실 천장의 시린 하얀색뿐이었다. 가슴 속 가장 큰 혈관이 찢어졌다는 대동맥 박리라는 병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워만 있다가 휠체어에 의해 조금씩 활동을 했고, 그다음에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조금 몸이 회복되었을 때, 병실 복도 끝에서 창밖의 세상을 내다봤다. 거리는 여전히 겨울의 한복판이다. 사람들은 두툼한 외투에 목을 파묻고,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이리저리 바쁜 걸음을 옮겼다. 새벽 한 두 시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간간이 계속 이어졌다. 얼마 전만 해도 나 역시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숨 쉬고,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며 걸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투명한 유리 벽 뒤에 홀로 서서, 이방인의 모습으로 그 밖의 풍경을 본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30대의 나이에 나는 동토의 땅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7년의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의 겨울은 무척이나 춥고 길었다. 우울한 날씨, 멀리 그리고 가까이 보이는 황량한 눈 덮인 시골 마을과 벌판, 그리고 잎사귀 하나 없이 뼈대만 남은 자작나무들, 지금 내 처지도 마치 그 옛날 하바롭스크의 벌판에 서 있는 벌거벗은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다시 오는 봄을 볼 수 있을까.’

 

단상 사진.jpg

그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은 러시아 풍경화의 시조라 불리는 알렉세이 사브라소프(Алексей Саврасов)의 대표작 까마귀가 돌아왔다(Грачи́ прилете́ли)라는 그림이었다(사진). 그림 속 풍경 역시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녹다 남은 눈은 질척이고, 하늘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앙상한 자작나무 가지들은 차가운 바람에 떨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앙상한 가지마다 검은 점 같은 까마귀들이 북적이고 있다.

 

우리에게 봄을 알리는 손님이 강남 갔던 제비라면, 러시아의 봄은 3월 초순,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을 때 까마귀의 날갯짓과 함께 찾아온다. 그래서 까마귀는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들이다. 러시아에도 제비가 날아오기는 하지만, 제비는 따뜻한 5월경에야 나타난다. 그러기에 동토의 땅에서 마주하는 까마귀의 분주한 움직임은 제비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반가운 봄의 신호가 된다. 그림 속 어떤 녀석은 지난가을 두고 간 둥지를 부지런히 수리하고, 어떤 녀석은 입에 마른 가지를 물고 분주히 움직인다. 낡고 오래된 교회의 종탑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비록 흐리지만, 그 너머엔 머지않아 쏟아질 봄볕이 이미 준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내게도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병실에서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사브라소프가 포착한 저 까마귀들의 날갯짓처럼, 봄은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아직은 찬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겨울이 쉽게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지만, 하바롭스크의 그 혹독한 추위 끝에도 결국은 대지를 뚫고 새순이 돋아났듯이, 내 몸을 할퀴고 간 이 고통의 계절 또한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봄에 가장 먼저 노란 기지개를 켜는 산수유꽃을 보고 싶었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바람은 찼고,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봄을 향한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우리 아파트 화단에 점을 찍듯 피어난 산수유꽃을 발견했다. 그 작고 노란 꽃송이들이 마치 기다렸지? 이제 시작이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아이처럼 울고 웃었다. 대단한 성취나 사역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살아남아 꽃의 얼굴을 마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축복받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의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성도들의 얼굴을 살피고 사역의 결과물들을 관리하느라 정작 하나님이 내 발치에 뿌려놓으신 작은 기쁨들은 짓밟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회복의 시간 속에서 만난 풍경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산수유가 지자 벚꽃이 눈꽃처럼 날렸고, 그 자리를 라일락의 진한 향기가 채웠다. 아침마다 창을 열면 코끝을 간지럽히는 라일락 향기에 나는 마치 첫사랑을 만난 소년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라일락이 지고 난 뒤 돋아난 연두색 잎사귀들은 또 어떠한가. 그것은 단순히 초록색이 아니었다. 생명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뿜어져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희망의 색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차례로 자기 순서를 지키며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나를 위해 기쁨을 준비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어제는 아내와 차를 타고 가다가 아카시아를 보았다. 곧 온 천지에 흰 포도송이처럼 매달린 아카시아가 바람에 흔들리며 향기를 뿜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내 삶의 다음 페이지에는 또 어떤 기쁨이 숨겨져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예전에는 사역의 결과물이나 눈에 보이는 부흥이 나의 기대와 소망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매일 아침 창가에 도착하는 햇살의 각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잡풀의 강인함, 그리고 내 곁을 지켜준 아내의 손이 나의 소망이 되었다.

 

 

하나님은 거대한 이벤트뿐만 아니라, 계절의 사이사이, 시간의 틈새마다 작은 기쁨이라는 보물을 숨겨두셨다. 이제 나는 묻는다. "주님, 아카시아꽃 다음에는 어떤 기쁨을 숨겨두셨나요?” 일에 매몰되어 소망을 잃어가는 당신에게 나의 이 투박한 고백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당신이 무심히 지나치는 발밑의 연두색 잎사귀 하나에,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응원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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