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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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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4-02-27 10:08

본문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다. 의식주와 같은 생활의 염려, 성적, 취업 같은 불안정한 미래의 염려,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 안위 대한 염려 등 모든 사람이 크고 작은 염려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그의 저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 Be Happy)에서 사람들이 하는 염려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이며, 오로지 4%만이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의 96%가 쓸데없는 염려라는 의미이다. 젤린스키는 나머지 4%도 사실 제어할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가 하는 걱정이 다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경은 염려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번 호에서는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염려에 대한 단어의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신약 성경에서 염려, 염려하다라고 쓰인 단어는 헬라어 명사 메림나(μέριμνα)와 메림나에서 파생된 동사 메림나오(μεριμνάω)이다. 메림나는 나누다, 분리하다의 의미의 동사 메리조(μερίζω)와 마음을 뜻하는 누스(νος)가 결합 된 단어로서, ‘분리된, 갈라진 마음을 나타낸다. 이들은 염려, 걱정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돌보고 보호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먼저, 메림나오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용례를 살펴보자. 메림나오는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메림나오)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2:20). 또한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돌보거나 보호할 때 사용되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메림나오) 하셨느니라”(고전 12:24-25).

 

다음으로 염려, 걱정의 의미를 살펴보자. 성경에서는 염려와 걱정이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메림나)하는 것이라”(고후 11:27-28).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고 셀 수 없이 매를 맞고, 세 번이나 파선되는 위기, 강도, 동족 및 이방인의 위협 등 여러 번의 죽을 위기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에는 각종 위기의 염려보다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가 가득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 바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일만 생각했다.

 

염려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용례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실 때 그들이 복음 때문에 체포되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메림나오)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10:19-20). 제자들이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친히 그들을 통해 직접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염려는 의식주와 같은 생활이나 불확실한 미래와 같은 세상적인 걱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메림나오) 말라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메림나오)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염려하여(메림나오)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6:25-31).

 

부정적인 의미로 세상적인 염려는 우리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메림나)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13:2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 세상의 염려는 말씀을 들어도 삶에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며, 마음을 둔하게 해서 재림의 날을 준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이 갈라지게 한다.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메림나오)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고전 7:33-34). 염려로 갈라진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5-8).

 

결국 세상적인 염려는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가볍게 여기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염려는 문제 해결이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생각에서 오기 때문이다. 염려는 문제 해결을 하기는커녕 문제 해결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기쁨과 평안과 더불어 건강까지도 잃게 만든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7:22).

 

성경은 염려의 해결책으로 무엇을 제시하는가?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메림나오) 말라”(12:22). 먼저 생활의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너희 염려(메림나)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주님은 염려를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염려를 능히 해결해 주시고도 남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염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피고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염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생활의 염려 대신 바울처럼 복음을 위한 선한 염려를 하자.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온전한 마음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절히 간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메림나오)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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