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 13:6~15)
엄기호 목사(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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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2-01-18 10:47본문
시편 121편에는 “눈을 들어, 도움을 주실 하나님이 계신 산을 바라보라”고 했고, 시편 123편은 “눈을 들어, 모든 것을 만드셨고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깨어있는 순간에는 무언가를 바라보게 되어 있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계속 쳐다보지 않았다면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롯의 처가 소돔과 고모라에 진노의 심판으로 유황과 불이 쏟아지며 생사가 걸린 중대한 그 순간에 뒤를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롯의 가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러한 예는 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대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 친척지간에, 목자들끼리 시비와 분쟁이 계속되면 모두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롯의 의견을 존중해주면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권은 네게 줄테니, 네가 먼저 행선지를 택하라 네가 좌를 선택하면 나는 네가 남긴 우를 가질 것이고, 네가 우를 선택하면 나는 네가 남긴 좌를 가질 것이다.”(9절)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으면 피차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갈 5:15). 개인의 탐심으로 인해 관계가 분열되는 분쟁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카 롯을 먼저 배려해주는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어진 새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 절망적인 환경에서 선택을 잘하라!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은 롯은, 눈을 들어 지형을 관찰해보더니 요단강의 물줄기가 넉넉히 흐르는 들판, 소알까지 비옥한 평야와 윤택한 목초지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선뜻 택하여 이동해 갔습니다.
그러나 롯의 성급한 선택은, 선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선택권이 주었을 때,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기껏 골라잡은 것은, 세속적 도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보이는 것만 보이지만, 영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입니다. 롯의 선택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한 선택이었습니다. 롯의 선택은, 미래에 다가올 결과를 내다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또한 철없는 조카 롯의 선택은, 아브라함의 입장은 전혀 고려함 없이 자기 입장만 생각한 이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13절에 보면, 롯이 선택한 일대를 가리켜, “소돔사람은 악하여 야훼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롯이 선택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물이 넉넉한 만큼 죄도 넉넉했던 쾌락의 도시여서, 타락과 범죄도 많았습니다. 결국 잘못된 선택을 했던 롯은 심판을 받아, 아내도 재산도 다 잃고, 패가망신 당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선택은 어떠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내어준 결과, 졸지에 물을 잃고 평지, 초장, 유리한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은, 괘씸한 생각, 섭섭한 마음도 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분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 틀림없는데,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왔던 아브라함으로서는, 조카 롯의 행위로 인해 신앙을 저버리거나, 결정된 약속을 철회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신뢰 가운데 나누었던 약속이 깨어지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여 등을 돌릴 때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그처럼 상처받고 실의에 빠질 때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롯처럼, 육신의 안목을 따라간 그곳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지만, 아브라함처럼 영의 눈으로 받아들이게 된 곳은 그곳이 어디든 축복이 임합니다.
2022년 새해에는 롯처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 빼앗겨, 성급한 선택, 선하지 않은 선택, 틀린 선택, 어리석은 선택,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처럼, 화평을 추구하는 선택, 희생을 각오하고 양보하는 선택, 자신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선택, 극한 고난 중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영적인 선택, 어떤 어려움에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바른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환경적 절망이 영적인 소망이 되고, 현재의 속수무책이 미래의 새로운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실로 아브라함에게도, 훗날 거부가 되는 땅의 복만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 되는 신령한 복, 그리고 은혜를 망각했던 롯이 훗날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복을 안겨주셨습니다. 이처럼 선택을 잘하는 2022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지금 눈을 들어라!
한글성경에는, “너는 눈을 들어(창13:18)”라고 되어 있지만, 영어성경 KJV에 보면 “Lift Your Eyes Now” 즉 ‘지금’(Now)이라는 단어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는, 롯이 소돔성을 향해 떠나는 것을 아브라함이 바라보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여기 ‘눈을 들라’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롯이 떠나간 곳을 바라보지 말고, 눈을 돌리라’는 의미가 있고, 다른 하나는 ‘네가 바라봐야 할 곳을 바라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라볼 곳을 바라보라는 것은, 바라봐서는 안 될 곳은 그만 바라보라는 말씀이며, 갈 곳을 가라는 것은,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말라는 말씀이고,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말씀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해,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쓰리고 아픈 과거나 패배의식에 더이상 사로잡혀있지 말고, 새로운 기회를 붙잡으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빼앗긴 물줄기, 빼앗긴 초장 때문에 생긴 상처도, 분한 마음도, 서운한 생각도 빨리 떨쳐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 힘으로는 감당 안 되는 외적인 환경과 형편 말고, 내 심령 안에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햇빛 나고 바람 불면, 짙은 안개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듯,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눈을 들면, 근심, 걱정, 염려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지극하고 끝없는 사랑을, 눈을 들어 계속 바라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 아닌 높은 이상과 큰 가능성을 보라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믿음의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우리에게도 주실 줄 믿습니다. ‘보이는 땅을 ~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신 것은, 물질의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며, ‘네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능히 셀 수 없으리라’ 하신 것은, 후손과 번영의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힘겨운 현실만 내려다보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동서남북을 바라보아야 삽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성도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십자가를 향하여 눈을 들어, 그 위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지목해주시는 동서남북 그리고 그 너머에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았다면, 바라본 만큼 종과 횡으로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축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종횡으로 두루 다니며, 열심히 밟고, 열심히 걷고, 열심히 뛰고, 열심히 달음질하며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행치도 않으면서 큰 복만 받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언어도단입니다.
2022년 올해는, 현재의 불행과 절망을 딛고 일어납시다. 현재의 좁고 척박한 이 땅의 현실에서 눈을 들어, 높고 광활한 하늘과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답답한 현실을 믿음으로 극복해 냅시다. 새해에는 우리도, 눈을 들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지목해주시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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