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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계승되어야 합니다” (시 145:1~21)

이수형 목사(교단 국내선교위원장, 순복음춘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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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6-08-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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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우리는 참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교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힘차게 찬양하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웃는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외로웠고, 어떤 아이는 부모와 대화가 끊어져 있었으며, 어떤 아이는 게임 속에서 위로를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사춘기니까.” “요즘 아이들은 원래 그래.” 그러나 아이들의 행동은 때때로 이런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제 마음이 힘들어요.” “누군가 제 마음을 알아봐 주세요.” 그래서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왜 또 그러니?”가 아니라 “요즘 네 마음은 어떠니?”입니다. 마음이 연결되어야 말이 들리고, 부모의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될 때 믿음이 자녀에게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좋은 교육과 직장과 재산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유산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사람은 좋은 환경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45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성공이나 왕국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다음 세대가 계속 찬양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다음 세대에 계승해 주어야 할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믿음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할 때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시편 145편은 시편의 배열에서 다윗의 이름이 표제에 기록된 마지막 시편입니다. 한 번의 감정으로 부른 노래라기보다, 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고백하는 찬양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이야기나 왕이 된 이야기 또는 나라를 통일한 업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 대신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셨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145편은 다윗의 자서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상화입니다. 다윗이 평생 경험한 하나님을 우리도 바라보길 원합니다. 시편 145편을 읽으면, 다윗이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가 어떤 하나님을 만났는지가 보입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첫째,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1절).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자신의 왕관을 내려놓고 더 크신 왕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자신 위에 또 다른 왕이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정권도, 시대도 바뀌고 세상의 왕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13절). 다윗은 하나님을 단지 어려울 때 도와주시는 분으로만 알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는 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맡길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훨씬 빠르게 변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기술이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상의 가치관도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가 붙들어야 할 것은 변하는 세상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둘째,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8절). 다윗은 왜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했을까요? 성경 전체에서 우리가 만나는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설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큰 죄를 범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밧세바 사건은 그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지만, 진실하게 회개하는 그를 영원히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생애를 아는 우리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다”는 고백의 무게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다윗을 다시 품으셨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을 버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능력의 하나님이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함께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의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17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죄인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의와 은혜가 만난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죄의 심판을 받으셨고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용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만난 자리입니다.

우리도 자녀에게 이런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실수하면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돌아오면 품으시는 하나님, 정죄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셋째,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14절). 이 구절은 시편 145편에서 가장 따뜻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넘어진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사람은 넘어지면 손가락질하지만, 하나님은 붙드십니다. 사람은 실패를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다윗은 십자가를 보지는 못했지만,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그 노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대대로 찬양하며 믿음을 이어가야 합니다.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4절). 

다윗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고, 다음 세대가 또 그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습니까? 

 

첫째, 믿음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홍해를 건넜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사기는 기록합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10).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홍해는 역사 속에 남아 있었지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은 잊혀졌습니다. 가나안 땅은 물려받았지만,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은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이어지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환경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의도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선포하다’(4절)는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정보가 아니라 간증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부모의 성공담보다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어. 그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우리의 식탁, 가정, 일상 속에서 계속 들려져야 합니다.

 

셋째,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삶이 따르지 않으면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설교보다 부모의 삶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기도보다 걱정을 배우게 됩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아이들은 예배보다 다른 것을 우선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딤후 1:5).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복음을 아는 부모가 되라’고 하십니다. 자녀는 완벽한 부모를 통해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을 때 회개하는 부모를 통해 십자가를 배웁니다. 용서를 구하는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배우고, 은혜로 다시 일어서는 부모를 통해 부활의 소망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신앙교육입니다.

 

넷째,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가 믿음을 전할 수는 있지만, 자녀의 마음에 믿음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설명하고 본을 보일 수는 있지만, 굳은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부모는 말씀의 씨앗을 심고 교회는 그 씨앗에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지금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모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계속 사랑하고, 복음을 말하고, 믿음의 본을 보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조급하게 움켜쥐지 말고 성령께 맡기십시오. 믿음의 계승은 부모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21절). 이것은 평생 하나님을 경험한 다윗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우리는 자녀의 모든 길에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를 가든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실패와 눈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유산은 없습니다. 믿음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남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보여주며 성령께서 자녀의 마음에 역사하시도록 기도할 때 믿음은 이어집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말고 복음을 아는 부모가 되십시오. 실수하지 않는 부모가 아니라, 실수했을 때 사과하고 함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부모가 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 안에 믿음의 씨앗이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우리에게서 시작된 찬양이 우리 자녀의 입술로 이어지고, 그들의 찬양이 또 다음 세대의 입술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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