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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신앙생활’ (계 3:14~18)

최광혜 목사(충주지방회장, 대소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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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6-06-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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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남자 성도가 기도원에 올라왔는데 자기는 하나님의 음성을 자주 듣는다고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었습니다. 기도원 근처에 무덤이 있었는데 옷을 다 벗고 무덤에 누워있었습니다. “왜, 옷을 다 벗고 누워있느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님께서 옷을 다 벗고 있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 영적으로 문제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살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이후부터 우리는 더 이상 벌거벗은 몸으로 밖으로 다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옷을 입고 다녀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절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벌거벗은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옛날 동화 중에 벌거벗은 임금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 화려한 옷에 관심을 두고 있는 왕이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옷에 대한 집착과 허영심이 가득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기꾼 두 명이 궁궐에 찾아왔습니다. 자신들에게는 특별한 옷감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옷감인데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옷감은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고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옷을 입으면 누가 바보이고, 누가 똑똑한 지를 알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옷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사기꾼들은 옷을 짜는 것처럼 베틀 앞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왕은 혹시 옷감이 보이지 않을까봐 신하들을 보내서 옷을 잘 만들고 있는지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은 옷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 바보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척 연기를 했습니다. 신하들은 왕에게 정말 아름답고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옷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왕은 다 만들어진 옷을 보러 갔습니다.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안 보인다고 하면 왕이 바보라고 소리를 들을까 봐서 보이는 척 연기를 했습니다. 왕은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백성들에게 보여주려고 행렬에 나섰습니다. 어른들은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한 어린아이가 외쳤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 왕은 행렬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진행했습니다. 왜 끝까지 갔을까요?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행렬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멈추면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길이라면 당장 멈춰야 합니다.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멈추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사울 왕이 실패한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했었습니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서 혼자 남을 까봐 두렵습니까? 가진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무섭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삶이 더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가난과 질병이 우리의 삶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기에 묶여 버리면 안 됩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고, 출세하지 못한 것이 창피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값싼 옷을 입고 교회를 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배를 자주 드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 용서하는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 세시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외상값도 갚지 않고, 늘 험담하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벌거벗은 영혼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빨리 회개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벌거벗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생각이 많아지면 걱정만 늘어날 뿐 해결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멈추고 이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생각은 근심과 두려움만 만들 뿐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응답받을 수 없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길이 보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두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 소년의 이름은 듀러이고, 또한 친구의 이름은 한스였습니다. 너무나도 가난했던 둘은 도저히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르자, 한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듀러! 네가 먼저 그림을 배워라. 내가 돈을 벌어서 너를 도울게. 나중에 네가 성공해서 그림이 잘 팔리면 나는 그때 그림 공부를 하도록 할게.”

 

한스는 갖은 고생을 하며 듀러의 학비를 대주었고, 듀러는 한스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림 공부를 마칠 수 있었고, 그림도 팔리기 사작하였습니다. 이제는 듀러가 한스의 뒷바라지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듀러가 한스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듀러는 한스가 한 교회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듀러의 학비를 대기 위하여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한스는 굳어지고 다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듀러가 보게 되면 괴로워 할까봐 그렇게 한스는 잠적을 하여 듀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 친구가 공부를 마치고 유명한 화가가 되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 손은 비록 노동으로 마디가 뒤틀어져버려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있게 두 손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친구가 앞으로 더욱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듀러는 한스의 기도에 눈물을 흘리며 큰 감명을 받고 즉시 붓을 꺼내어 한스의 모아진 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앨버트 듀러의 <기도하는 손>입니다. 듀러는 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하는 손이 가장 깨끗한 손이요, 가장 위대한 손이요, 기도하는 자리가 가장 큰 자리요, 가장 높은 자리다.”


노아가 술에 취했을 때 벌거벗은 몸으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맏아들 함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그의 후손이 고통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큽니까? 물론 함도 잘못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 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서 옷을 벗고 자지 않았다면 자녀들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것에 취해 있으면 나의 영혼은 벌거숭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분별력 없이 살면 나는 벌거벗은 영혼이 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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