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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설교자 그레고리와 크리소스톰 > 한상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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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설교자 그레고리와 크리소스톰 > 한상인 목사




천년의 설교자 그레고리와 크리소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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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자 작성일19-11-11 15:25

본문

교회에 대한 외부의 박해가 사라지자 내부의 갈등은 더 심화되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의 갈등으로 유배를 당하고 죽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오늘은 천년이 지나도록 살아있는 탁월한 두 설교가의 삶을 살펴본다.
 
1.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St. Gregory of Nazianzus, 329-390)


그레고리는 4세기 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풀의 대주교이다. 삼위일체론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대바실과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와 함께 갑바도기아 3대 교부이다. 그는 갑바도기아의 나지안주스 근처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그리스인이었다. 어릴 때 나지안주스와 가이사랴, 알렉산드리아, 아테네에서 공부했다. 아테네로 가는 중 폭풍을 만나 예수님께 살려주시면 헌신하겠다고 서원했다. 아테네에서 공부하면서 후에 황제가 되어 배교한 줄리안과 바실 등과 교제를 나누었다.


그레고리는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싸웠으며, 그들이 습격해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 혼란이 계속되자 황제는 아리우스파를 쫓아내고 그레고리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 후에도 계속 문제가 발생하자 그레고리는 감독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고향 갑바도기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6년 동안 그는 자전적 시를 포함하여 많은 시와 편지를 썼다. 그는 신학적인 사색과 개인적인 고통과 질병에 대한 시를 쓰면서 수행자로 보냈다. 종종 그의 성결함과 학식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그의 친구들이 그를 방문하곤 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실 때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 아니며, 인성을 취하셨을 때 신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최초로 성령과 하나님 사이의 발출(procession)의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시지만 아들로부터는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성령의 영원성을 주장했는데, 구약에서는 좀 감춰진 면이 있지만 예수님의 승천하심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의 가장 탁월한 설교가로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시를 많이 썼다. 그의 설교의 감동은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섬기라는 설교에 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한밤중이라도 ‘내일 다시 오세요’라고 미루지 말라. 선행의 은혜는 민첩하게 행할 때 갑절이 될 것이다.”
 
2. 황금의 입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년)


크리소스톰은 헬라어로 ‘크뤼소스’(황금)와 ‘스토마’(입)가 합성된 이름이며, 안디옥의 사제이며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었다. 그는 ‘황금의 입’이란 이름처럼 세계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안디옥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모친 안두사(Anthusa)는 강한 여성으로 그의 영적 성장과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18세 무렵 세례를 받았으며 그때로부터 교회를 섬기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다. 그는 안디옥에서 12년 동안 창세기, 마태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등을 가르치고 삶에 적용하였다. 당시 국세 문제로 유혈폭동이 일어나 황제의 군대가 안디옥을 진압하려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20여 편의 설교를 통해서 절망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위로하였다.


그에 대한 안디옥 사람들의 존경은 말할 수 없이 커서 그는 납치되다시피 콘스탄티노플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감독의 직무를 수행할 때 도처에서 부패가 만연하였다. 그의 개혁적이고 비타협적 설교는 황실과 성직자들을 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결국 그의 반대파들은 그를 해임하고 추방하였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때마침 지진이 일어나 그는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그는 아르메니아로 쫓겨 갔다. 거기에서 현존하는 230통의 편지를 썼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 황제는 더욱 혹독한 지역으로 유배를 명하였고, 그는 잔혹한 대우를 받으며 유배지를 향해 가다가 죽음을 맞게 되었다.


크리소스톰의 600편 이상의 설교와 강론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대부분의 설교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분량이었다. 그는 조직적인 설교보다 성경본문을 설교하였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되도록 가르쳤다. 항상 안디옥의 사회적 빈부의 격차가 그를 괴롭혔으며, 그는 탐욕적인 부자들을 예리하게 비평하였다. 그는 “우리가 양이라면 우리는 이리를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목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리라면 세상의 이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자가 이리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다. 소유물이 우리를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종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또한 그는 부자의 재산에 대해 말했다. “여러분이 언젠가 무덤에 눕게 되더라도, 탐욕의 결과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행인들이 여러분의 큰 집을 볼 때마다 ‘저 집에는 많은 이의 눈물이 배어 있다. 저 집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아들과 과부들이 해를 당하였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품삯도 받지 못하고 땀을 흘렸을까?’라고 말할 것이다.”


천년이 넘도록 살아있는 설교는 어떤 설교인가?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하게 전하는 설교이다. 둘째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설교이다. 셋째 외부의 직책보다 내면의 신실함을 지킴으로써 삶과 일치된 설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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