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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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5-09-09 10:19본문
인간 경험을 강조했던 새로운 설교학 운동
이를 비판하고 대안 제시하려는 찰스 캠벨
새로운 설교학 운동 공헌에도 불구하고 한계 드러내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모든 새로운 운동은 이전의 운동이 가진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탄생한다. 설교학계에서 1960년대 말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태동하게 된 것은 전통적인 설교가 가진 문제들에 대한 반동의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1900년대 말 새로운 설교학 운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챨스 캠벨이 그 목소리 중 하나의 주인공이다. 캠벨은 탈자유주의 신학의 거두 중 한 사람인 한스 프라이의 신학을 근거로 자신의 설교학적인 논지를 펼쳐간다.
찰스 캠벨이 지적하고 있듯이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이야기’(narrativ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로 새로운 설교학 운동 진영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에 대한 정의들은 각양각색이다. 이야기 설교가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캠벨은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설교학 진영 학자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정리한다. 설교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과 설교 형식 전체를 이야기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설교학이란 “한 가지의 것이라기보다는 몇 가지의 서로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상호 관련된 설교적 접근방식들이 폭넓게 포함될 수 있는 일종의 커다란 우산과도 같은 것”이다(찰스 L. 캠벨, 『프리칭 예수: 한스 프라이(Hans Frei)의 탈자유주의 신학에 근거한 설교학의 새로운 지평』, 이승진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195).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설교학 운동에 속한 학자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우산’ 역할을 하는 것, 곧 대부분의 새로운 설교학을 아우르는 특징은 무엇일까? 캠벨은 다음의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인지적이고 명제적인 설교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인간 경험을 강조하는 것, 둘째, 설교를 통한 두 세계, 곧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를 서로 연결하려는 것, 셋째, 비유와 플롯(plot)을 강조하면서 설교에 있어서 이야기의 역할을 주로 형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 등이다. 캠벨은 프라이의 문화-언어적 신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가진 이와 같은 특징들을 비평하면서 또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물론 캠벨은 새로운 설교학 운동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가진 공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첫째, 교회가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서 결국은 성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는 점이다. 제목설교 또는 주제설교는 하나의 성경 본문에 천착하기보다는 그 제목 또는 주제에 맞는 다양한 성경 구절들을 엮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런 이유로 성경 본문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부족했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영향으로 성경 본문의 의미를 깊이 다루려는 움직임들이 이전보다 훨씬 활발해졌다.
둘째,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학자들은 설교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설교 형식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었다.
셋째, 새로운 설교학 운동 진영의 학자들은 복음서가 어떤 영적 실체를 이론적으로 증명하거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지시하고(indicate)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캠벨도 인정했듯이 복음서가 가진 지시성(referential character)은 한스 프라이가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전 자유주의학자들은 복음서를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자료 또는 일반적인 종교 워리를 전달하는 텍스트로 이해했다. 그러나 프라이는 복음서의 이야기가 예수라는 인물과 사건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신앙적인 내러티브인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복음서을 읽을 때 윤리적, 종교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복음서의 사건을 과거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서가 지시하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복음서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사건 안으로 독자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넷째, 캠벨은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행한 긍정적인 공헌으로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설교라는 것이 논리에 근거해 인간 지성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감성 역시 자극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교 언어에 대한 관심이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인간의 감성이 자극되는 설교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설교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설교라는 것이 언어를 통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교 언어에 대한 관심은 시적이고 은유적인 언어에 대한 관심과 상상력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갔다. 캠벨은 이처럼 새로운 설교학 운동, 곧 이야기 설교학의 도움을 진행된 긍정적인 발전들을 결코 간고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캠벨은 이런 공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설교학 운동으로 인해 교회가 더욱 활력을 얻고 더욱 신실한 모습으로 성장했느냐고 질문한다. 실제 교회는 점점 침체되어갔고 많은 교회가 현대 사회에서 소수계층으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또한 캠벨은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갖는 신학적이고 해석학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의 책 후반부는 그렇게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갖는 신학적, 해석학적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새로운 설교학 운동에 대한 캠벨의 분석과 대안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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