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Ⅴ)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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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5-04-29 13:21본문
새로운 설교학운동 발전 속 여러 비판과 대안 등장
설교자와 회중 간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
로즈, ‘대화 설교’ 제시해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모든 이론이나 운동이 그러하듯 새로운 설교학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대안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 비판과 대안의 대표적인 학자 중에 루시 앳킨슨 로즈와 찰스 캠벨을 들 수 있다. 몇 차례에 걸쳐 이 두 학자의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루시 앳킨슨 로즈(Lucy Atkinson Rose, 1947-1997)는 미국 콜롬비아신학대학원의 설교학 교수였다. 로즈가 현대설교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첫째, 설교학의 흐름을 설교의 목적, 내용, 언어, 형식이라는 네 가지 기준을 통해 ‘전통적인 설교학’, ‘케리그마 설교학’, ‘변혁적 설교학’(이 연재에서 새로운 설교학이라는 부르는)으로 정리한 것과 둘째, 각 설교학의 장단점을 정리한 뒤에 자신만의 새로운 설교학 이론인 ‘대화적 설교’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로즈가 가장 관심하는 지점은 설교자와 회중 간의 거리이다. 로즈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설교학들은 모두 설교자와 회중 간의 거리를 전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청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변혁적 설교학(새로운 설교학)마저도 실제로는 설교자와 회중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 로즈의 분석이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의 목적은 설교자가 회중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케리그마 설교학에서는 ‘케리그마’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반면, 변혁적 설교학에서 설교의 목적은 진리나 케리그마의 전달이 아니라 회중의 경험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로즈가 주목한 것은 변혁적 설교학에서 설교자가 회중에게 ‘경험’을 일으킨다고 했을 때, 그 ‘경험’이라는 것이 누구의 것이냐는 것이다. 로즈에 따르면 그 경험은 전적으로 설교자가 성경 묵상과 연구 가운데서 얻은 자신의 경험이다.
“설교자는… 자기가 먼저 경험한 변화를 이제 회중도 경험할 수 있도록 전달해 주는 특권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셈”이며 “회중은… [설교자가 제시하는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절할 뿐인 수용자로서의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루시 앳킨슨 로즈,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이승진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173).
설교자와 회중 간의 거리감은 양자 간의 연합보다는 차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양자 사이에는 여전히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거리(gap)가 존재한다. 이전 설교학에 대한 분석 후에 로즈가 제시하는 그녀만의 설교 방법론은 ‘대화 설교’(conversational preaching)이다(로즈, 179). 이 설교 방법론은 그녀가 제시하는 설교의 목적에 근거한다. 그녀는 설교란 믿음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말씀 주변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이런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촉진되고 다시 재조명을 받는 것이다(Lucy Atkinson Rose, Sharing the Word: Preaching in the Roundtable Church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7], 93).
다시 말해 “설교란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녀는 독일의 신학자 디드리히 리츨(Dietrich Ritschl)의 말을 인용한다: “설교는 능력을 나눠주거나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설교란 능력을 받고, 사람들을 선별해서 모이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을 모이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와 같은 믿음의 공동체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형성해가는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리츨에게 설교자와 회중의 거리는 잔혹한(cruel)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자와 회중은 모두 만인제사장직(the priesthood of all beliers)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복음을 선포한다면, 회중들은 일주일 동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그것이 양자 간의 차이점이다. 설교에 대한 리츨의 생각 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 주변에 모인다는 부분이 로즈의 설교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 주변에 모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로즈는 그것을 ‘대화’라고 정의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 주변에 모여 나누는 대화라는 것이다. 여기서 ‘대화’라는 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로즈가 제안하는 대화 설교란 설교시간에 회중에 있는 성도들이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설교자와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로즈가 제인하는 대화 설교는 부분적으로 설교자와 회중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로부터 자라나며 그 대화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이 대화에서 설교자는 모든 것에 정통한 사람(the one-in-the-know)이 아니라 삶과 신앙의 문제에 대한 동일한 동료(an equal colleague)일 뿐이다. 따라서 회중과의 대화 속에서 설교자는 최종적이거나 단 하나의 대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관점과 학습 과정들과 해석 입장들 그리고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분명히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상호 간의 건전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조성해야 한다”(로즈,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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