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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Ⅶ)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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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Ⅶ)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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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Ⅶ)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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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주희 작성일26-02-11 09:06

본문


진실한 말은 여전히 삶의 일부

말은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 갖게해

‘대화’로서의 말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적


조지훈 목사.jpg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크레독이 제시했던 설교가 저평가되었던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미국의 행동주의 신학, 둘째, 시각적인 미디어의 발전을 통한 말의 의미 상실, 셋째, 시각 매체를 통한 인간의 지각 방식의 변화, 넷째, 신앙의 확실성에 대한 의심, 다섯째, 설교자들이 누리던 권위의 상실, 여섯째,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설교가 가지는 어려움 등이었다. 

 

이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크레독은 계속해서 설교를 해야 하는 이유 역시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언어학, 스피치, 해석학, 커뮤니케이션 연구들이 설교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빛을 던져준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설교를 위한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첫 번째 증거는 일상생활에서 말이 가지는 중요성이다. 

 

크레독은 우리의 일상에서 말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그와 같은 사실을 여전히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인사와 안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가운데 나누는 대화들,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서 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보여준다. 

 

크레독은 말한다. “우리들 삶의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그리고 거짓과 의심이 난무하는 삶의 상황 속에서 왜곡될 수도 있지만, 말에 대한 거룩성의 자취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권위 없는 자처럼』, 67). 진실한 말은 여전히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요소이다. 

 

설교가 여전히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심리학이나 심리요법과 같은 영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말이 두 사람 이상의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이다. 

 

의사소통의 도구인 말은 화자와 청자 사이에 무엇인가 - 크레독은 이것은 ‘사건’(event) - 가 일어나게 하며 청자로 하여금 대화의 주제에 참여하게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숙해간다. 그런 관계는 언어를 매개로 해서 발전한다. “인간은 목소리라는 수단을 통해 인식을 함께 공유하며, 공동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통해 짝을 이루기도하고, 가정을 이루며,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권위 없는 자처럼』, 71). 

 

크레독은 구두 언어가 기록된 언어(written words)와 다른 것이 그런 연대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싹트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community)를 염두에 둘 때라야 비로소 그 의미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크레독이 설명하는 대화로서의 말이 갖는 특징은 오늘날 설교자들이 설교언어를 신학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둘 이상의 대화에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에 대해 반응하고 응답하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통찰은 선포된 설교 언어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하다. “선포된 말씀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목표를 향해서 진행해”가기 때문이다(『권위 없는 자처럼』, 71). 즉, 기록된 말씀과 달리 선포된 말씀은 과거나 미래의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의 것이라는 것이다. “들려지는 소리(sound)는 언제나 현재적이며, 실재하는 경험”이다(『권위 없는 자처럼』, 71). 

 

대화로서의 말 그리고 대화로서의 설교가 갖는 이와 같은 특징은 말을 하는 행위 자체에 ‘의식의 움직임’(counsciousness of movement)이 있으며, 변화 불확실성, 방해에 대한 개방성, 불안정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대화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어떤 주제를 말하는 과정에서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이 어떤 결과를 미리 예측했을지라도 그 결과는 상대방의 반응과 대응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의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의식은 대화가 진행해가는 과정을 따라 움직여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의식의 움직임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인간 의식이 갖는 본능적인 요소이다. 말이 갖는 대화적 속성, 의식의 움직임, 불확실성, 개방성, 불안정성 등은 이후 소개하게 될 크레독의 설교방법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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