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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경건은 나를 버리는 노력에 있지 않다” > 목회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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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경건은 나를 버리는 노력에 있지 않다” > 목회단상




“사명과 경건은 나를 버리는 노력에 있지 않다”

전병훈 목사(서울남서지방회 증경회장, 예수흔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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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3-03-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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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훈 목사.jpg

사람들은 무엇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이상으로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나 역시 아무리 오래되고 쓸모없는 물건이라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심리적으로 내게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보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는 상실감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내게 버리는 싸움은 늘 스트레스였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버림을 강조해왔다. 욕심, 미련, 미움, 분노, 번뇌, 자기 자신을 버리는 등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버림과 비움은 구도자의 덕목이 되었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에 대해서 대중들은 존경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기독교계에서도 버리고 비우는 것은 경건의 본질처럼 여겨지고 있다. 보다 나은 목회자로서 경건을 추구하고, 비우기 위해서 늘 자신과 싸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결단과 실천에 실망하는 우리는 성경 안에서 이 버림의 싸움이 과연 모범답안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오래 전 청소년부 수련회에서 십여 명의 아이들에게 “인생의 항해”라는 가치인식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아이들 각자에게 작은 메모지 30장을 동일하게 나눠주고 긴 여행에 반드시 가지고 가야할 물건 또는 사람, 그리고 추상적이라도 괜찮으니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적도록 하였다. 일정 시간에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한 장 한 장 내용을 채워나갔고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적었다. 핸드폰, 컴퓨터, 친구, 교과서, 구명조끼, 엄마, 아빠, 다소 추상적이지만 신앙인임을 증명할 믿음, 사랑을 적은 아이들도 있었고, 적잖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적기도 했다. 목회자로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하는 단어였다. 

 

이내 ‘인생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자 애들아 이제 너희는 배를 타고 인생의 긴 항해를 가고 있어. 시작은 순탄했지. 갑자기 풍랑이 찾아왔어! 배가 위태로우니 너희의 짐 중에서 10개를 버려야해!” 아이들도 이미 예상을 했었는지 이내 30장중 10장을 골라서 버렸다. 그 중에는 길게 고민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2~3분 이내 정리가 되었다. 항해가 다시 시작되었고 잠시 후, “자 애들아 큰일이야! 지금 배가 암초에 걸려서 움직이지 않는다. 배를 가볍게 띄우기 위해서 또 다시 10개를 버려야해!” 처음과 달리 아이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전과는 달리 아이들 모두가 10장을 버리기까지 5분 이상 지체되었다. 이내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해적선이 쫓아오고 있으니 더 빨리 도망치기 위해서는 7장을 버려야한다”고 하자 이윽고 장내에 탄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고, 어떤 아이들은 “난 엄마를 버렸어!” “난 우리 강아지를 버렸어!” 하면서 울먹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쉽지 않은 선택에 1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런식으로 마지막 1장을 남기고 전부 버림으로서 항해는 끝이 났고 삶의 우선순위의 가치를 설명하며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진행되는 내내 눈에 거슬리는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처음부터 진지함 없이 너무나 빠르게 종이를 버렸다. 버리는데 20초도 채 걸리지 않았고 마지막 순서까지 거의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성의 없이 참여하는 아이에 대해서 언짢았고, 쉬는 시간에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고민도 없이 버렸니? 혹시 이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었니?”하고 물으니 이 친구가 하는 말이 “목사님 뭘 고민할 게 있나요? 저는 애초에 이것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으로 꼭 잡고 있었어요! 그러니 나머지는 뭘 버리든 상관 없었는데요!” 

 

순간 내 마음에 강한 울림이 있었다. 이 친구는 버리는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잡는 싸움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선택한 것은 예수님도 믿음도 아닌 여자친구였지만, 애초에 버림이 쉬웠던 이유가 잡고 있는 것의 가치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귀했기 때문이다. 믿는 우리는 버리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버려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잡았기에 버릴 수 있는 진리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소욕을 버리는 싸움이 아니라 성령을 붙잡는 싸움, 부활의 푯대를 잡는 싸움을 했다. 결국 잡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 그것이 은혜고 능력이다. 버리는 싸움은 나의 노력이다. 그러나 잡는 싸움은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주시는 분이 아니면 절대로 잡을 수 없다. 우린 버려야만 구원을 얻고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예수가 오시면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버려지고 비워질 수 있다. 마치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고, 생명이 오면 죽음이 사라지듯이 말이다. 

 

사명자의 원대한 비전도 이와 같다. 소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다. 절망의 시기에 오히려 소망이 간절해진다. 소망의 반대말은 욕망이다. 흔히 꿈과 비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내 속에서 나온 꿈을 욕망이라하고 주님께로 온 비전을 소망이라 한다.  

욕망을 비워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주께로부터 오는 소망을 경험하면 욕망은 사라진다.

 

왜 기도하는가? 소망을 잡기 위함이다! 죄를 회개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은혜와 내 욕심을 버리기 전에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정답임을 알아야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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