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연보”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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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5-11-21 10:12본문
오늘날 교회에서 헌금은 교회의 재정 운영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헌금에 대한 성도들의 인식은 때때로 부담이나 의무감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이 헌금에 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의 의미로 사용된 “연보”(롬 15:26; 고전 16:1-2; 고후 8:2, 20; 9:5, 11, 13)가 갖는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고, 바울이 원했던 진정한 연보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신약 성경에서 연보는 주로 세 가지 헬라어 단어로 표현된다. 첫째, ‘로기아’(λογεία)는 ‘모금, 헌금’이라는 뜻으로, 재정적 기부를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이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 바울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이라고 말하며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재물을 모으는 행위를 지칭한다.
둘째,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는 ‘교제, 나눔, 참여’를 뜻한다. 이 단어는 단순한 금전적 기부를 넘어선 깊은 관계성과 나눔의 정신을 내포한다. 로마서 15장 25-27절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이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했다고 할 때, 이 연보는 ‘코이노니아’를 말한다. 이는 그들의 기부가 단순한 재정적 지원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와의 신앙적, 인격적 교제에 동참하는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셋째, ‘유로기아’(εὐλογία)는 ‘축복, 감사, 칭찬’이라는 의미이다. 고린도후서 9장 5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는 ‘자발적으로 미리 준비한 헌금’이라는 문맥에서 ‘유로기아’는 ‘관대한 선물’ 또는 ‘아낌없는 기부’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억지로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쁨 가운데 드리는 헌금을 뜻한다. 이처럼 진정한 연보는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 세 가지 단어를 통해 바울이 말하는 연보가 단순히 돈을 걷고 내는 행위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서로 교제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과 헌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마게도냐 지역 교회들이 헌신한 연보를 예로 들며 진정한 연보가 가지는 참된 의미를 설명한다. 그곳의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지만, 넘치는 기쁨으로 힘써 연보를 드렸다. 바울은 이를 두고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라고 마게도냐 지역 교회들을 칭찬한다.
그들이 드린 연보는 단순히 재정적 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교회를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연보는 ‘믿음의 열매’인 것이다. 바울은 이들의 연보을 ‘은혜’(χάρις)라고 표현하며(고후 8:4),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은혜가 넘쳐흘러 연보라는 아름다운 행위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진정한 연보는 물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드려도 그것은 단순한 기부 행위에 불과하며, 믿음의 열매가 될 수 없다. 반대로, 적은 물질이라도 온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드릴 때,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와 기적을 담은 믿음의 결실이 된다.
바울이 이방 지역 교회들에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거두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한 재정적 원조를 넘어선 중요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연보를 통해 이방 지역 성도들의 믿음의 열매를 예루살렘 본교회에 대한 사랑의 증표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교회에는 여전히 유대주의자들이 많았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바울은 연보를 통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유대인들과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방인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헌금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달될 때, 교회는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연보는 단순한 구제 활동이 아닌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공동체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표였다.
바울은 연보를 통해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지역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막고, 서로를 향한 사랑과 교제를 증진하고자 했다. 이는 바울 선교사역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므로 연보는 믿음의 결실이자 열매였고, 이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향한 이방 지역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의 증거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의 아름다운 고백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이 말한 진정한 연보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헌금은 단순히 교회 운영을 위한 재정 충당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이웃을 향한 긍휼과 나눔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연보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맺어진 믿음의 열매여야 한다. 억지로 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 또한, 그 연보는 우리의 믿음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바울이 원했던 연보는 믿음의 결실이요, 그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사랑의 증표였다. 우리도 이와 같은 믿음으로 헌금을 드릴 때, 우리의 헌금은 단순한 물질을 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향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과 교제를 더욱 깊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임을 증명하는 고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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