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시대의 유일한 윤리적 토대 -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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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6-02-11 08:53본문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가치 혼란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한국 근대 개혁에 있어 결정적인 영적 토대를 제공했던 기독교가 이제는 오히려 세상의 비판과 오해의 대상이 된 현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성찰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독교인은 비난에 맞서기보다, 먼저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윤리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시는 공의와 사랑의 통치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강조했던 기독교 세계관의 정수이고 성도의 존재 양식이며 기독교 윤리의 핵심 원리인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 엔 크리스토)라는 고백을 다시금 붙들어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바울이 전하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인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의 의미를 헬라어 원어의 관점과 성경 본문을 통해 이해하고, 이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양식으로서 어떻게 기능하고 적용되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바울 서신에서 이 표현이 사용된 맥락을 추적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행함이 ‘도덕적 의무’를 넘어 ‘존재적 연합’에서 비롯됨을 나타낸다. 이는 오늘날 행위 중심적 윤리에 지친 성도들에게 복음적 윤리의 진정한 자유와 능력을 제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바울 서신 전반에 걸쳐 약 164회나 등장하는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는 신약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구 가운데 하나인데, 여기에 사용된 전치사 ‘엔’(ἐν)은 헬라어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복잡한 단어 중 하나이다.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처한 새로운 실재를 묘사한다. TDNT(신약신학사전)와 BDAG(바우어헬라어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전치사 ‘엔’(ἐν)은 단순한 공간적 위치를 넘어선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바울에게 ‘엔’(ἐν)은 성도가 거하는 ‘새로운 영역’이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만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듯,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대기 속에서만 존재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음을 뜻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을 넘어, 우리를 포함하는 ‘보편적 인격’으로 이해했다. 아담이라는 옛 인류의 질서 아래 죄와 죽음의 지배를 받던 우리가, 이제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 안으로 옮겨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윤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무 이전에 “내가 누구 안에 있는가?”라는 존재의 자각에서 시작된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라고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정체성을 깨달을 때, 일상에서 나타나는 거룩한 행실은 억지스러운 노력이 아닌 내면으로부터의 자연스러운 ‘표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추종자가 아니라, 신비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생명의 영역 안으로 옮겨진 존재임을 뜻한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토대이자 공기이며 경계선이 된다는 고백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할 때 항상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정체성’과 ‘그에 합당한 삶’을 연결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옛 자아의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새로운 본성을 소유하게 된다.
다음으로 관계의 윤리이다. 바울은 서로 용서해야 할 근거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내 의지가 아닌, 내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고 선포하며 사회적 평등과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당시의 견고한 계급과 차별을 무너뜨린 것은 인권 운동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통치 영역 안에서 모든 이가 동일한 생명을 가졌다는 영적 실재였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성도들의 삶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그리스도의 향기(εὐωδία)”(고후 2:15)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세상 속에서 정직하고 겸손하며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낼 때,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교회 안에서만 경건한 ‘종교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삶의 현장이 ‘그리스도 안’(ἐν Χριστῷ)의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직장 동료를 대할 때나 공적인 책임을 다할 때, 내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 윤리의 시작이다.
결국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 윤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 사회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밖’(χωρὶς Χριστοῦ)에 있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가치관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된 존재임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과 공의의 영역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갈 때, 무너진 도덕과 윤리는 회복될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언하는 ‘편지’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경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참된 제자의 삶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기독교 윤리의 회복은 거창한 구호에 있지 않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친절을 베풀고, 갈등의 현장에서 화평의 도구가 되는 구체적이고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 안에’(ἐν Χριστῷ) 거하는 자로서, 그분의 아름다운 성품을 우리의 일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신실하게 그려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ἐν Χριστῷ)라는 이 위대한 진리를 삶의 이정표로 삼아야 한다. 이 진리가 우리의 신앙과 삶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도덕적 의무’라는 무거운 짐을 벗고 ‘새 피조물’로서 누리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경계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무너진 시대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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