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옮겨 놓으라” (요한복음 11장 38~44절)
이재훈 목사(인천지방회장, 순복음화도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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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7-01 14:32본문
육체의 질병 가운데 ‘신장결석’이란 심한 고통을 가져다주는 병이 있다. 신장에 돌이 생겨 그 돌이 움직이면 감당하기 어려운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몸안에 생긴 돌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다.
돌은 사람의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있다. 찬송가 197장 2절 가사에 보면, “주님의 권능은 한없이 크오니 돌 같은 내마음 곧 녹여 주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마음에 돌이 박혀있으면,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 어렵다.
‘돌’을 정의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전, 우리 자신이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요, 우리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걸림돌과도 같다.
오늘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고 계신데 이는 ‘돌을 옮겨 놓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성경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해야 할 몫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반드시 내가 주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역사를 행하신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시지는 않는다.
그러면, 우리 안에 어떤 돌을 옮겨 놓아야 할까?
1. 부정적인 생각의 돌을 옮겨놓아야 한다.
‘생각이 곧 그의 정체이다’라고 한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이 있는데 잠 23:7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정의한다.
생각이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말과 행동으로 이어져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내 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나의 삶이 긍정의 삶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꼭 현실이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될 것을 믿고 바라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시니, 처음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쏟아놓은 것을 알 수가 있다.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미 죽어있는 시체가 묻혀있는 무덤의 돌을 왜 옮기라 하십니까? 불가능한 일, 안되는 일을 왜 하려고 하십니까? 라는 항변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안 된다라고 하는 생각 속에 있는 장애물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둘째,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셋째, 시간은 충분한가?
32절에 마르다, 마리아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9절에 “주여 죽은 지가 벌써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나이다”
과거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과거에 예수님이 이곳에 계셨더라면, 나흘 전 나사로가 죽기 전에 일찍 오셨더라면. 자꾸 과거, 지나간 시간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처럼 시간에 제한을 받는 분이 아니기에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적기요, 역사가 일어나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막 10:27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후 6:2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 이로다” 요 11:40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지금 이시간 내 말, 내 능력을 믿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 살릴 수가 없어, 사람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만,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한계 속에 일하고, 할 수 있고 없고가 갈라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 갇혀 계시지 않는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벧후 3:8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을 때 나는 나이가 많아서, 나는 너무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서… 라는 시간적 개념의 부정적인 생각을 벗어버려야 내 마음의 돌을 옮겨 놓는 것이 되고, 그래야 예수님이 나의 삶에 역사하실 수 있는 것이다.
2. 수고와 번거로움을 회피하려는 돌을 옮겨놓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 하셨을 때, 돌을 옮겨놓는 것은 번거로움과 수고가 수반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그 수고와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도의 성자로 일컫는 간디는 이런 말을 하였다.
세상에는 7가지의 잘못된 병폐가 있다. 1) 원칙없는 정치 2) 양심없는 쾌락 3) 인격없는 지식 4) 도덕성없는 상업 5) 인간성 없는 과학 6) 노동없는 부 7) 희생없는 종교
그중에 여섯 번째, 일곱 번째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수고와 희생이 없이 얻으려는 시도가 사회적 병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으로,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막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있으라 하시고”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3중적인 희생과 수고를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땅히 주님을 위한 수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나를 위한 수고는 누구나 다하고 산다. 내 한 몸 위해, 내 가족 위해. 거기에서 그치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거기서 나아가 타인을 위한 수고, 예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한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딤후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님을 위한 수고에는 반드시 칭찬과 그에 따른 보상이 뒤따른다.
3. 불순종하고 싶은 마음의 돌을 옮겨놓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되므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고, 그 결과 우리 안에 불순종의 죄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인류의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완성되었고, 오늘날도 믿음의 사람들은 불순종의 마음을 이겨내고 주님의 명령, 계명에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은혜와 복을 받고, 놀라운 기적의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불순종의 유혹을 받는다.
첫째,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라고 할 때 둘째, 힘든 것을 하라고 할 때 셋째, 해봤자 안될 것을 하라고 할 때 넷째, 상황에 안 맞는 것을 하라고 할 때이다.
아마도 마리아와 마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선뜻 순종하고 싶지 않은 그런 갈등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로 결정하고 돌을 옮겨 놓았고, 그 결과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오는 기적을 체험하는 주인공이 될 수가 있었다.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를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놓으니”
믿음의 구분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계명에 순종하고 사느냐 아니면, 내 뜻을 앞세우고 불순종의 삶을 사느냐, 둘 중에 어떤 하나를 선택하느냐의 결정이 곧 신앙생활이며, 그에 따라 은혜와 복을 받고 사느냐 그렇지 않는지가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어떤 가로막힌 돌이 있는가? 성찰해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적인 믿음의 태도, 그리고 주님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주님의 뜻에 절대순종하는 믿음으로 은혜와 복을 받고 승리하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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