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중심의 생동하는 삶 (요한복음 11장 38~44절)
박상규 목사(경기제일지방회 증경회장, 순복음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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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4-29 13:31본문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의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요 11:6) 이에 예수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 11:14) 말씀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를 만나신 후 무덤으로 가시어 이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내용으로 본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8대 표적(43,44절; 2:9; 4:53; 5:8; 6:10,19; 9:6; 21:6) 중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실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르다는 기쁨보다 원망과 아울러 작은 기대감을 보였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는 아쉬운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이같은 원망과 아쉬움의 감정을 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이사야 55장 8~9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굳게 믿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현재의 시대는 이기적이고 황금만능의 시대이며, 너무나 큰 불안감과 함께 인본주의에 덮이고 무질서 속에 있습니다. 이 시기에 다시금 십자가를 바라보며 성경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니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질서함에 말씀을 상고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또한 생동하는 삶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현재적인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르다는 무덤의 돌을 옮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하며 주저거림과 아울러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통분히 여기셨으나, 예수님과 마르다와의 대화 중에 미래적이며, 관념적인 어린 신앙의 마르다를 보시고 예수님은 책망치 아니하시며, 그녀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입술로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부활이자 생명’ 임을 알려주시며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될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이에 마르다는 ‘내가 믿나이다’ 라는 말로 확언함으로써 결단하고 행할 수 있는 의지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과감한 용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험난한 신앙 생활의 여정에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현재적인 믿음의 결단과 용기와 지혜를 갖고 전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산 소망으로 충만하여 말씀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하는 겸손함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우리의 산 소망이십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행하실 때, 가나안 여인이 귀신 들린 딸에 대한 도우심의 외침과 몸부림의 상황에 즉 이방인으로서 구원을 갈망하는 여인을 보시고 칭찬하시며 그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15장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고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로부터’의 말씀을 다시금 묵상합니다. 이와같이 현재적인 믿음을 갖고 소원하며 준행하므로 예수님의 역사하심에 생동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둘째, 절대 순종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는 사망과 어둠에서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는 부활의 은총을 입은 자로 순종함에 부활의 생명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무덤이란? 현대의 인간이 갇혀있는 절망의 무덤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 그리고 질병과 죽음의 무덤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님만이 영원한 미래와 희망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그를 믿고 의지하고 나아와야 할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요한일서 2장 16절에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자아의 욕심과 욕망은 그 자체가 무덤이요 죽음입니다.
나사로의 육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허망한 육체적인 욕심과 욕망은 이곳 저곳으로 냄새를 풍기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 디도서 2장 12절에 보면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높이 오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멈출 줄도 알고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정상으로 오르기보다 산을 내려오는 순간에 부상을 많이 당한다고 합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쉬워하며 박수를 칠 때 내려놓고 낮아짐이 지혜인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 아래 낮아진 자세로 은총을 입은 자들은 육체적인 욕심과 욕망의 무덤에서 해방되기를 소망하여, 사망과 어둠에서 나와 생동하는 삶을 누려야 될 것입니다. 아울러 그 분의 말씀에 절대 순종 하여야 하겠습니다.
셋째, 해방과 자유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아직 수족이 매여 있고 얼굴이 수건에 싸여 있습니다. 그는 그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앞으로 나오고 모든 상황의 초점은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본문 44절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율법에 매여지고 둘러싸인 상태를 의미하며, 세상적인 지식과 경험을 앞세우는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23장 13절과 1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도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교만과 무지함에 매여 있는, 율법만 앞세우는 자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입었는데 인간이 만든 여러 가지 교리와 율법으로 얽매이지 아니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에 보면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곧 말씀이요 말씀은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이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참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족보와 가문과 전통을 높이 평가하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조건 자랑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은혜와 진리를 말하고 가르쳐도 듣지 않고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학연 지연 또는 경험을 앞세우며 예수님을 뒤로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입니다.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평가하거나 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옳고 그름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생명을 받은 우리는 더 이상 끈과 수건으로 동여매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해방하고 자유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어떠한 일에 부딪칠 때 현재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현재 진행형으로 일하고 계심을 믿고 바른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조급한 눈은 하나님의 포괄적이고 완전하신 계획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시편 119편 18절에 보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늘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해방의 기쁨을 통한 생동감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만이 부활이자 생명임을 믿음으로 확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동하는 삶의 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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