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막 5:22~29)
김지형 목사(충남1지방회장, 성거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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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11-05 08:23본문

우리는 모두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시계의 바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지만, 그 시간의 무게와 색깔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느리게 흐르고,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울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마가복음 5장에는 시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다.
1. 야이로의 숨 막히는 시간
회당장 야이로는 공적인 위치와 체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오직 하나뿐인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체면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예수님께 달려와 발아래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그의 시간은 너무나도 절박했다. 분명 예수님을 향해 걸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달렸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달려왔을 것이다. 그에게는 단 한 순간도 허비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무리들에게 시간은 달랐다. 사람들은 신기한 기적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을 뿐이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시간의 무게는 전혀 달랐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딸이 겨우 한 살쯤 되었을 때였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밥상 모서리에 부딪힌 것이다. 한 참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후 응급실로 실려 갔다. 새벽 네 시,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때 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아침은 뭐 먹지?” 나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의사에게는 그저 일상 속의 시간, 아침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각에 있었지만, 서로의 시간은 결코 같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은 시간을 두 가지 단어로 정확하게 구분한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다. 물리적인 시간, 시계로 잴 수 있는 시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다. 질적인 시간, 하나님의 때, 결정적인 순간이다. 사람에게는 흘러가는 크로노스가 있지만, 하나님께는 그 안에 특별한 순간, 카이로스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2. 열두 해의 시간, 그리고 단 한 순간
야이로의 간절함 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잠시 멈춘다. 큰 무리 가운데서 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었다.
그녀의 지난 12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얼마나 서러운 시간인가. 살기 위해 모든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오히려 병은 더 심해졌다. 돈도 잃고, 희망도 잃고, 마음마저 지쳐버린 세월이었다. 그에게는 단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긴 크로노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여인은 무리 틈에 숨어들었다. 감히 예수님 앞에 서서 말할 용기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웠다. 다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단 1초,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1초가 그녀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카이로스가 되었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그녀의 지난 12년은 긴 고통의 크로노스였지만,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던 단 1초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카이로스가 된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그녀에게 아버지가 있었다면 야이로처럼 예수님께 대신 간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홀로 남겨져, 스스로 예수님께 나와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믿음은 더욱 간절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손을 내밀어야 한다.
3. 끝난 것 같은 시간, 그러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치료를 받는 은혜의 시간이 흐를 때 그 사이에도 야이로의 간절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초조했을까. 사람들 속에서 “빨리 가야 하는데, 왜 이 여인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는가”라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사람들이 집에서 달려왔다. 그들이 전한 소식은 잔인했다.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더 이상 선생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다 끝났다. 그의 시간은 다했다. 숨 막히는 야이로의 크로노스가 결국 멈춰버린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께서 집에 이르러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달리다굼.” ― 소녀야, 일어나라. 열두 살에서 멈춰버린 줄 알았던 소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소녀는 일어나 걸었고,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끝난 줄 알았던 아이의 시간 위에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4. 우리의 시간
인생은 결국 언젠가 끝난다. 우리의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멈춘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끝나지 않는 시간을 받는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이며, 천국의 소망이다.
어쩌면 지금 나는 야이로처럼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숨 막히는 시간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처럼 끝없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언제든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미는 것이다. 스치는 1초의 믿음이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흘러가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 시간이 다 끝나는 순간에도, 천국의 소망이 되신 예수님께서 내 손을 붙드시는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게 하실 것이다.
그 날 달리다굼의 역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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