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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시대의 성령운동(8) / 중세 수도원 중심의 성령운동 > 한상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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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시대의 성령운동(8) / 중세 수도원 중심의 성령운동 > 한상인 목사




교회사 시대의 성령운동(8) / 중세 수도원 중심의 성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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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0-07-3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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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늦은 비 성령의 시대로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중세 1,000여 년 동안에도 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령의 역사가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1. 방언의 은사와 능력


성경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방언인 대신방언(glossolalia)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대인방언(xenolalia)의 두 가지가 나타난다. 베네딕트회의 힐데가르드(1098-1179년)는 전혀 배우지 않은 라틴어 성경을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과 성자들의 생애, 의학, 신앙적인 주제에 관하여 많은 책을 전혀 생소한 라틴어로 기록했다. 스페인 태생의 성 도미니크(1170-1221)는 깊은 기도 중에 독일어로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안젤리우스 클라레누스(?~1337)는 전혀 배우지 않은 헬라어를 말하였다.

 

한편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안토니(1195-1231)는 오순절에 일어난 은사와 동일한 영적 은사를 체험했다. 그는 로마에서 외국의 군중들에게 라틴어로 설교하였는데 모두가 그들 자신의 모국어로 그의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도미니칸 수도회의 빈센트 페러(1350-1419)에게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한번은 50명의 사제들과 성 도미니크 수도회의 많은 무리들이 모였는데, 그들 중에는 프랑스인, 이태리인, 영국인, 독일인, 스페인인, 포르투갈인 등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마치 자신의 모국어를 듣는 것같이 그의 설교를 이해하였다. 그밖에도 예언적 은사와 많은 치료의 기적들이 그의 전도 사역에 나타났다.


2. 중세 후반기 성령운동


1) 왈도파(Waldenses)

 

피터 왈도(또는 발도)는 프랑스 리용의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회심 이후 그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1176년경에 빈민을 위한 무료 급식회를 조직하였고, 사도적 청빈주의를 주장하였다. 그의 신앙에 감화를 받은 추종자들이 모여 왈도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왈도파에 속한 이들은 베스트팔렌과 사보이, 피몽 지역에서 소수의 공동체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며 성경대로 살아가려 하였고, 결국 로마교회로부터 파문되고 종교재판과 십자군을 통해 이교도로 박해당했다.

 

왈도파는 “알 수 없는 방언으로 거친 말”들을 중얼거리곤 했다고 한다. 그들은 신유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러므로 병든 자에게 기름 붓는 것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을 믿음의 조항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엄숙히 고백한다. 병든 자가 있어서 그들이 요청할 때에는 그들과 함께 기도하는 자들에 의하여 기름 부음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사도들이 말한 그 계획과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몸의 병을 낫도록 한다. 또한 우리는 사도들이 실행하도록 명한 기름 부음이 치유와 유익을 위하여 행해질 것을 고백한다.”


2) 알비겐시스파(Albigenses, Albigensianism)

 

10세기 중반 불가리아에서 시작한 이단 종파로 카타리파라고도 하며, 프랑스 툴루즈 지방의 알비(Albi)에 전파되어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알비파라고도 부른다. 교리는 마니교적 이원론과 영지주의와 유사하다고 남겨진 자료들이 말한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들을 사용하는 가톨릭 미사나 성사를 거부하였으며, 공중 앞에서의 성서낭독과 해설, 공개적 고백의식, 의식적 만찬, 통과의례를 중요시하였다. 특히 통과의례를 통해 일반신자는 '완전한 자'가 되는데, 무척 금욕주의적이었다. 1183년 교황 루시우스 3세는 모든 ‘이단자를 제거하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설치했으며, 이는 십자군에 의한 학살로 이어졌다. 1207년 프랑스에서는 도미니크를 주축으로 한 가톨릭 사제들과 알비겐시스파 사이에 신학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도미니크는 종교 재판을 집행하고 알비겐시스파 신자들을 박멸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14세기 말에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알비겐시스파는 자신들이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고 성령의 음성으로 교회 제도를 대신한다고 주장했다. 성령의 침례를 받게 했으며 성령의 충만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안수하는 등 은사적 사역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은 정황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단시되고 있으나, 마르틴 루터가 주장했던 95개조 반박문이나 교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고발 내용의 어떤 것들이 그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로마가톨릭은 루터를 고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루터는 이미 오래전에 정죄 받은 왈도파와 알비겐시스파의 이단 교리를 다시 끄집어냈을 뿐이다.”


3) 기타 종파들

 

중세 교회의 혼란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양자론을 주장하는 폴리시안들을 비롯해서 재침례파, 매노파, 후기 침례교파 등 여러 종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기를 열망하였다고 한다. 데살로니가 감독 니콜라스 카바실라스(1320-1390)는 카리스마적 은사들에 대해 증언하였다. “초기 교회시대에는 병 고침과 예언과 방언 같은 은사들을 부여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특별한 능력이 나타남을 모든 사람에게 명백히 증거했다. 지금도 그러한 은사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도 사람들은 장래 일을 예언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오직 기도로써 질병을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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